내가 나를 만나기까지 걸리는 시간
곁에 오래 있었다는 말은
시간의 길이를 뜻하는 것 같지만,
실은 반복의 밀도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자주 만나고
자주 이야기하고
함께 웃었던 시간이 쌓이면
우리는 그 사람을 오래된 사람이라 부른다.
학창 시절 친구들이 그렇다.
같은 교실, 같은 복도,
비슷한 고민을 나누며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각자의 삶이 생기고
각자의 방향이 생기면
거리는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예전처럼
모든 결정을 함께 고민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해야 하는 선택의 범위가
조금씩 넓어진다.
특히 돈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면
공기 흐름이 달라진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기에는
설명이 길어지고,
혼자 안고 있기에는
무게가 분명해진다.
그럴 때 나는
자꾸 타인을 찾는다.
누군가가 대신 판단해주기를,
조금만 책임을 나눠주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그럴수록 타인은 사라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타인이 사라진 자리에서야
또렷해지는 얼굴이 있다.
알고 보면
가장 오래 곁에 있었던 사람은
항상 나였다.
무너졌던 날에도
결정을 미루던 날에도
끝내 선택을 한 사람은
나였다.
단단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서.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흔들린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어떻게든
다음 날을 살아낸다.
그 힘이
특별한 재능이라기보다
그저 나에게 남아 있던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자주 잊는다.
모든 결정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나는 나를 의심한다.
내가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 선택이 틀렸을지 모른다는 불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답을 견디는 사람 역시
나라는 사실을
가끔은 외면한다.
가장 오래 곁에 있었던 사람을
가장 늦게 떠올린다.
누군가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듯
오늘은
그 말을 나에게도 해본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
그저 스스로 결정을 해낸 하루였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생각보다
오래
자기 자신과 함께 살아간다.
그 사실을
가끔은 잊은 채로.
어쩌면
가장 늦게 떠올리는 사람이
항상 가장 오래 곁에 있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