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자라지 않았지만..
사람은 자라온 방식만큼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고들 말한다.
받은 만큼 주고,
본 만큼 따라 한다고.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닐 것이다.
다만 나는
그 공식이 언제나 정확하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나는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그 사랑이
풍족하게 표현된 적은 많지 않았을 뿐이다.
먹고사는 일이 먼저였고,
집 안의 공기는 늘 긴장과 계산으로 가득했다.
아픈 사람이 생기면
가정은 자연스럽게 생존 모드로 들어간다.
그 안에서 감정은
우선순위에서 조금씩 밀려난다.
누군가를 탓할 수는 없다.
그 시절의 어른들도
자기 방식대로 최선을 다했을 테니까.
하지만 아이는
표현되지 않은 사랑을
스스로 번역하는 법을 잘 모른다.
그래서 나는
조금 빨리 단단해졌고,
조금 빨리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해졌다.
감정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어디까지 열어야 하는지
자주 헷갈렸다.
마음을 닫으면 편했고,
열면 지나치게 열렸다.
중간을 배우지 못한 채
균형을 스스로 찾아야 했다.
그래서 지금의 모습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를 묻는다면,
특별한 사건보다는
그저 그렇게 흘러온 시간의 합이라고
말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억지로 거리를 둔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나를 밀어낸 것도 아니다.
어쩌면
관계를 다루는 방식이 서툴렀던
나의 몫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의 잘못을 찾아내고 싶지는 않다.
이 삶은
이미 내 것이 되었으니까.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게 어떤 것인지는
이제는 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조건을 달지 않아도 되고,
오늘의 기분과 상관없이
다가와 주는 것.
말 대신 온기로 남는 것.
처음에는
그런 사랑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받아본 기억이 분명하지 않으니
내가 줄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을 덜어낼수록
그 자리에 여유가 생겼다.
사람에게 다 쓰지 못한 에너지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따뜻할 자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약한 존재 앞에서는
조금 더 단순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조건을 묻지 않는 어른이 되는 일.
상처의 크기를 비교하지 않는 일.
“왜 그랬어?” 대신
“괜찮아”를 먼저 건네는 일.
어쩌면 나는
내가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을
다른 방식으로 확인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사랑은
기억의 총합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충분히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남기고 싶어서
건네는 것.
나는 아직도 서툴고,
가끔은 관계 앞에서 망설인다.
그럼에도
마음을 완전히 닫지는 않기로 했다.
내가 지나온 시간이
나를 굳게 만들었다면,
앞으로의 시간은
조금 더 말랑해져도 되지 않을까.
받지 못한 것을
그대로 남겨두지 않는 것.
그 결핍을 다음 사람에게까지
전염시키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한 선택이다.
사랑을 많이 받아서가 아니라,
그래도 누군가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부분을 안고 산다.
그래도 나는 주는 쪽을 택한다.
혼자라는 결과가
내 마음까지 메마르게 만들 이유는 없으니까.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느꼈던 날에도
누군가에게는
계산하지 않고 건넨 적 있지 않은가.
그건
누군가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 그래서 나는
오늘도 혼자이지만
잘 살아가고 있는 쪽에 가까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