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습이라는 삶에 예술이라는 약간의 일탈이 휘몰아칠때
조용한 섬(제주도라는 것은 영화를 보다보면 자연히 알게 된다)의 느린 오후를 지나는 버스 안의 한 남자를 비추며 영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풍경을 묘사하는 싯구가 조용히 읊어진다. 그리고집안의 감귤 농사를 얼떨결에 물려받고 생활력이 강한 아내를 맞아 생활하는 시인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극중에서 그의 시는 이렇다할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듯 하고, 시인이라는 커리어가 사실 그렇게 근사하게 포장되는 직업은 아니라는 것쯤 스크린 속의 사람들이나 밖의 사람들이 이미 눈치를 챘을 때쯤,
시인의 입안에는 뉴욕의 맛이라는 도넛이 하나 물려진다.
생각보다 진행이 빠르고 코믹하게, 시인은 자신의 감귤가게 너머로 생긴 도넛가게에서의 단맛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그 단맛을 전달해주는 소년에게 알 수 없는 애정이 불현듯 싹트게 될쯤, 인공수정 단계를 거치는 아내와의 관계가 대비되면서 영화는 방향 전환을 맞게 된다.
김양희 감독의 브런치글 "너를 만났을때, 한편의 시가 태어났다" (https://brunch.co.kr/@imjungmg/1) 에 따르면 곰같이 순수한 한 시인의 모습을 보고, 어쩔 줄 모르는 강렬한 사랑에 그를 놔뒀을때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도넛소년은 제주의 한 중년 남성 시인에게 뮤즈 같은 역할을 하고, 이런 설레임 때문인지 인공수정에 성공하게도 된다. 이내 그의 시작세계는 이러한 로맨스가 넘실거리게 되고, 그 동안 조용하고 별볼일 없던 그의 삶은 한 소년 때문에 휘몰아치게 되며, 그는 이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이야기하며 고민에 빠지게 된다. 물론, 대상인 소년은 자신에 대한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다가 조금씩 뒤늦게 깨달으면서 반항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고전적 퀴어 클리셰 차용
시인의 이런 사랑에 대한 주변과의 갈등은 클리셰로 표현이 된다. 어느날 갑자기 느끼게 되는 소년에 대한 감정, 유부남으로서 가정과 그 사랑에 대한 갈등. 늙고 뚱뚱한 중년 남성이 젊은 소년에게 가지는 감정에 대한 사회적의 의구 등이 차례대로 충실하게 나타난다. 특히, 시인이 아내에게 '그냥 오갈데 없는 불쌍한 애를 산책 좀 하고 밥 좀 먹고 했다고 그게 바람이냐?'라고 하는 대사나, 아내가 '너같은 것이 그런 사랑을 한다고 랭보가 될 거같냐'고 비아냥 거리는 장면이나, 소년의 손을 끌어잡기 위해 나간 자리에서 친구들이 둘러싸고, '이게 뭐야'라는 장면 같은 것들은 사실 이 영화가 퀴어 영화적으로 이야기르 설정한 것은 아니라, 단순히 시인에게 그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가장 비관습적인 상황을 선사하려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갈등은 고스란히 자신을 둘러싼 껍질을 파괴한 댓가로 생명력이 가득한 시로 탄생한다.
시의 역활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묘사할때, 방과 후 교실의 학생이 쓴 시가 매우 적절하게 그 역할을 다해내는 것처럼,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시어'가 이끌어가는 감정표현의 특별함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정말 시인이라는 캐릭터를 평소에 강한 의견을 내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으로 묘사를 하는데, 그가 엄청난 기쁨이나 분노 같은 것은 시적 표현으로 대사에 나타난다. 평소에 그렇게 복잡한 표현으로 말하지 않는 시인이 자신의 의견을 말할때, 적극적인 시어로 말하게 되는 것이다. 소년에 대해 알아차린 부인이 남편이라는 사람과의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음을 성토하며, 그의 시들을 탓하려 하자 시인은 자신의 시세계 만큼은 온전히 자기것임을 강하게 주장하며 보호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관습적인 고요한 일상에서 그의 욕망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담당하는 예술인 시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사회적인 일탈로 다가왔을 때, 그것을 승화하는 것도 시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관습이라는 삶에 예술이라는 약간의 일탈이 휘몰아칠때
시인의 매우 전원적인 삶에 다가온 일탈이 예술적 영감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거칠게 표현한 영화이다. 소년과의 사랑이라는 퀴어라는 테마도 그렇게 정교하게 짜여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시인과 주변과의 갈등도 그렇게 깊이있는 차원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단지, 이것은 시인이 그 동안 겪어보지 못하고, 아마 평생에 걸쳐 경험해보지 못했을뻔한, 개인으로서는 자신의 예상과 가장 정반대의 지점에서 일어날법한 일들을 표현한 것이다. 아주 조용한 포구에 폭풍우처럼 몰아칠 법한 사건의 설정인 것이다.
한 순진한 시인이 세상에 존재하는 뜻모를 쾌락하나를 맛보고 경험한 새로운 세계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자신의 결정을 만드는 과정을, 관습이라는 삶에 예술이라는 약간의 일탈이 휘몰아칠때의 이야기를 쫒아간다. 퀴어무비적으로는 많은 부분이 이해가 부족하고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감독이 의도한 '한 순수한 섬사람에게 강렬한 사랑이라는 맛을 보여주는' 이야기의 실험으로서는 매우 흥미로운 영화였다.
* 브런치 무비패스 프로그램으로 시사회 초청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