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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FABIO Oct 24. 2017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 (스포일러*)

기발한 제목을 따라가지 못하는 진부함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작가가 일부러 특이한 제목을 지었고, 호러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영화다.  


주인공 '나'는 병원에서 '공병일기'라는 시한부 인생 병상일기를 하나 우연히 줍게 되는데, 그 일기의 주인공은 같은 반의 인기가 많은 여자아이 사쿠라였고, '나'는 그녀의 비밀을 유일하게 아는 사람으로 몇 년 남지 않은 사쿠라와의 우정의 모험을 하는 그런 내용이다. '사쿠라는 살날이 몇년 남지 않은, 췌장과 관련된 심각한 병에 걸린 설정으로 나오는데, 설정상 어떤 병인지는 그렇게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아마도 췌장이란 단어때문에 '췌장이 좋지 않음' 정도의 암시만 나온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이상한 표현은 사쿠라에 따르면 옛 어른들은 어딘가 몸에 좋지 않은 부분이 있을때, 다른 동물의 그 해당부위를 먹고 싶어 하는 걸 느끼고 그로 인해 해당 부위가 치유된다고 믿었다고 하는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사쿠라가 '나'의 췌장을 먹게 된다면 치료가 되지 않을까 하는 농담을 하고, 또한 만일에 사쿠라가 죽게 된다면 '나'가 사쿠라의 췌장을 먹어, 사쿠라가 어떤 차원에서는 '나'와 함께 삶을 이어나가는 게 아닐까 하는 식의 이야기도 하게 된다. 이런 농담은 둘 사이의 결과는 확실하지 않은 시한부 로맨스로 시작되게 된다.


도서관이란 공간을 통해 표현되는 현재와 과거

이 영화는 학창시절의 이야기와 후에 같은 학교 선생님으로 부임해 오는 '나'의 이야기를 이어가며 보여준다. 특히, '나'가 학창시절에 도서위원이었고, 현재에서 곧 철거될 도서관의 장서를 재분류하는 작업을 다시 맡게 되면서, 과거의 회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영화 러브레터에서 도서관이란 기록의 공간을 매개로 하여, 현재와 과거의 연애담을 잇게 한것과 같은 식으로 사쿠라와 '나', 사쿠라의 절친인 '쿄코', '나'의 친구가 되는 '타카히로'의 이야기가 얽히게 된다. (물론 교코와 타카히로의 이야기는 이야기 진행에 필요할 정도로 다뤄짐).


위의 설정처럼, '나'는 사쿠라와 이어질 수 없는 시한부 로맨스를 시작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를 두려워하는 소극적인 '나'가 밝고 활달한 사쿠라와 좌충우돌하면서, 세상과 대화하는 법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고, 사쿠라는 '나'와의 로맨스로 인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어느 정도 유예할 수 있게 된다. 사춘기 청소년들의 엇갈리는 우정과 사랑도 이런 과정에서 다뤄지고, 그 과정에서 서로 보호할 수 있게 되거나 아니면 서로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는 상황들에 대한 묘사도 이어진다. '나'와 사쿠라는 점점 더 가까워짐을 느끼지만, 사쿠라로서는 남은 날을 건강하게 살아갈 친구들에 대한 배려로 '나'와의 활달한 나날들에 더욱 더 매진한다. 정작 사쿠라는 자신의 자리를 점점 줄여가게 된다.


사실 제목이 엄청나게 엉뚱하게 느껴지지 않는건, 상황과 반대로 활발하게 등장하는 사쿠라의 캐릭터 때문일 것이고, 눈치 빠른 사람들이라면, 이 제목이 낚시가 아닌 어떤 로맨스적 장치로 사용될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단, 이렇게 기발하고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한 영화는 생각보다 느슨한 배경설정과 전개로 그렇게 깊이 있는 감성을 전달하지는 못한다. 학창 시절의 일본에 대한 표현이 (그렇게 옛날이 아니라고 해도) 그냥 현대의 일본 도시들에서 이루어져서 몰입을 방해하는가 하면, 묻지마 살인의 피해자로서 사쿠라가 맞는 결말도 생각보다 극적인 효과를 주지는 못한다. 쿄코나 타카히로의 이야기는 너무 들러리에 불과한 설정이라, 타카히로 캐릭터는 사실 없애도 무리는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도서관을 매개로 한 현대-과거의 대화가 이루지고, 이것이 '나'의 제자들에게도 이뤄지는 유산같은 설정도 매우 상투적이고 진부하게 다뤄져서 굳이 학생 도서위원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가지고 등장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매우 가볍게 볼만한 연애물로서, 이 영화는 흥미로운 제목을 택해서 관심을 유발한 것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렇게 독특한 스타트를 끊을 것이었으면, 좀 더 깊이를 가졌어도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드는 아쉬운 영화였다.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초청으로 영화를 감상하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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