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었고, 자정에 시작을 할거였다면 아예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쩌다 베트남의 한적한(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출장을 왔고 저녁을 일찍 먹고 할 게 없는 밤 열시정도에 언팩 행사가 시작하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유튜브로 생중계를 보게 되었다.
노트9은 삼성이 폴더블 갤럭시 프로젝트를 선보이기 전까지, 그 누구나 예상가능할만한 수퍼 프리미엄 제품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더 많은 배터리 용량, 약간 더 커진 화면, 코닝의 글래스와 메탈과 갤럭시만의 곡선을 조화시킨 미래적 디자인, 더 나은 카메라 등등. 이를테면 1년이 지나면 어김없이 내가 좋아하는 TV쇼의 새 시즌이 시작하듯. 그냥 예측 가능한 다음 단계가 공개되었다.
블루투스 S펜과 DeX 기능 내장 등의 새로운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노트9은 삼성이 어색한 트렌드로 자리잡은 노치 디자인의 아이폰 X 디스플레이를 납품하였고, 최신 스냅 드래곤 AP의 1차 파운드리로서 자사의 제품에 가장 먼저 그 기술을 탑재하는 스마트폰 기술의 최첨단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난하게 성공할 수 있는 적당한 컨셉의 제품을 내려고 한 의지를 숨김없이 보여준다.
S7때부터 받은 인상은, 삼성이 거의 모든 면에서 애플을 따돌렸던 S6 엣지 발표당시의 센세이션을 계승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애플의 쿨함을 어색하게 따라가려는 노력이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번의 발표를 거치면서, 고동진 사장의 발표는 점점 더 경직되고 고압적이고, 핵심이 없는 대기엄 임원들의 보고서에 쓰이는 미사여구들만 나열하는 것으로 바뀌며, 다른 임원들도 과장된 쿨함을 연기하느라 발표의 여러가지 주제들은 클리셰로 전락해 길을 잃고 말았다.
노트9과 함께 발표된 갤럭시 홈과 갤럭시 와치의 디자인들도, 좀 더 전통적인 악세사리에 가까운 모양을 한 애플워치와 홈팟의 클론이었다. 그렇게 혁신을 잃은 구색의 라인업들은 삼성이 원하는 것이 정말 기술적으로 선도하는 기술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너무 앞서가지 않는 무난하고 안정적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노트9은 아마 다음번 갤럭시 까지 시장에서 구입 가능한 최고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일 것이다. 그리고, 누가 봐도 정말 뻔히 예측 가능한 만큼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심지어, 버튼배열을 극단적으로 없애고 아이폰 X같은 제스쳐 기반의 UI로 급속히 옮겨간 안드로이드 Pie도 탑재하지 않고, 프로젝트 트레블 같은 것에도 참여하지 않는, 안드로이드 버전 업데이트에 매우 보수적인 회사의 포지션도 고수하기도 했다. 그 어떤 루머들 조차도 감흥을 주지 못했다. 노트9은 당분간 스마트폰이란 혁신이 없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그 다음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스마트폰이라는 카테고리를 송두리째 뒤흔들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의 장치가 나오지 않는 이상, 그 이상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노트9은 더 이상 놀라울 것이 없는, 약속된 미래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