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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추나무집손녀 Feb 11. 2021

내려놓지 못한 자

너는 나를 그만 좀 괴롭혀라

'사부작사부작 거리지 말고 그냥 좀 있어요'

꽤 오랜 시간 내 머리를 만져주는 헤어숍 원장이자 동생이 며칠 전 나에게 던진 말이다.


힘든 상황들을 견디고, 견뎌서 지금 스스로에게 쉴 시간을 만들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불안감과 죄책감에 혼자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라고.

이직할 자리를 알아보는 것도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바쁜 척하는 것도 

다 하지 말라는 것.


맞다. 그녀의 말이 전적으로 맞다.

나는 주말에도 그냥 가만히 '멍 때리기'조차 못하는 편이었다.

눈, 귀, 뇌를 그냥 가만히 쉬게 하는 것이 뭔가 죄악인 것처럼. 심심하고 무료하다면 밖이라도 나가서 동네에 새로운 샵이 생긴 게 없나 봐야 하는 사람처럼.

없는 일도 만들어서 바쁜 척해야 하는 그런 사람.


이런 성향은 엄마를 닮은 것이 분명한데, 엄마는 늘 생산적이고도 즐겁게 그 모든 일들을 하시는 것 같아 

지금의 나랑은 조금.. 차이가 있어 뵈지만, 여하튼!!!


왜 나는 나를 가만히 두지 못해 야단인 걸까.


생각해보면 나는 늘 가족의 시선, 친구들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요즘 들어하게 된다.


몇 주 전 할머니와 함께 대구에서 가만히 과일을 먹고 있는데 할머니께 말씀하셨다.

'네가 제일 잘되고, 시집도 빨리 가서 안정 찾고
여하튼 네가 젤 잘되야되는 손년데...'


'...!'

아 그렇구나. 나는 그런 손녀였다. 그런 딸이었고, 나 스스로도 그런 압박감은 늘 가슴속에 품고 살았던 것 같다.

뭐든 자신감 있게 잘 풀리는 좋은 남자도 만나야 하고 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대기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혼자 밥 먹고 멋 부리고 재밌게 사는 그런 아이.

결혼이 많이 늦어졌지만 그래도 결혼하겠다고 만나는 사람이 있으니 조금은 안심이지만. 

그래도 결혼 빼고는 걱정 없는 그런 아이.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 내가 성공해서 꼭 엄마한테 효도할게'라는 말을 했었던 게 떠오르면서

나는 그때부터 조금씩 나 스스로에게 강박을 키워오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지금은 엄마에게 효도하는 딸이 아닌거 같아 죄책감이 든다...

하! 이런 생각도 좀 내려놓자구!


계속되는 시행착오 속에서 정체성은 미뤄두고 일단 보기 좋은 삶으로 들어가는 것에 급급해 이제 4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는 지금의 나를 만난 것은 그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쉬는 동안 책을 읽고 좋은 유튜브 강의를 들으며 내가 일을 하며 놓치고 있던 부분을 깨달았다.


'자기애', '자존감', '정체성'


내 20대를 꽉 채웠던 그 단어들이 최근 몇 년간은 내 머릿속에서 정말 희미해질 만큼 밀려나 있었다.

내가 가장 우선인 삶이 타인을 위한 배려랍시고 밀려나고, 일이 급해서 밀려나고, 상사들의 갖은 공격으로 밀려나 있는 삶이라니.

그러면서 나의 자존감도 낮아졌을 테고, 내가 정말 어떤 일에 가치를 느끼는지도 뿌옇게 퇴색된 것이 분명하다.


어이구 바보 멍청아.


그만 좀 스스로를 괴롭혀라.

이제 그만 내 목을 내가 할퀴는 짓을 그만하고, 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사랑해줄 시간이야.

조금만 크게 숨 쉬고 조금만 더 스스로를 안아주자. 

지금은 그것만으로 너를 위로하기에도 부족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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