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외 회사 전체를 위한답시고 맡게 되는 프로젝트부터, 인사팀이 있음에도 새로운 직원을 뽑을 때는 무조건 잡코리아 서칭으로 사람을 찾아내야 하는 어마무시한 미션(헤드헌터가 아닌 이상 기업에서 내 이력서를 서칭해 연락 오는 일을 조심하자),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업무 방어를 하지 말라는 무조건적인 강요.
대표의 변덕으로 흔들리는 업무에 대한 평가로 쌓이는 스트레스, 열심히 하고 있는 팀원을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서 깍아내리고 헐뜯는 잡다한 배출을 온몸으로 받아줘야하는 시간 등..
번아웃의 요인들은 겹겹으로 쌓이고 있었는데 내가 무시하고 있었던 거다.
'여긴 원래 그래. 네가 팀장이니 잘해줘야지. 이건 당연한 거야...'라는 외부의 가스 라이팅에 내가 잠식되고 있었는데 나는 몰랐던 거다.
팀장이라는 책임감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그 자체로 나는 스스로를 자제시키고 설득시켰고, 팀원의 고통을 안타까워하다가도 내가 죽을 것 같아 눈감아 버렸던 것 같다.
가스 라이팅이라는 것 정말 무섭다.
그 회사의 온전하지 못한 운영에 나 스스로를 녹일 만큼...
퇴사를 선언하고 나서야 주변 사람들이 '내가 나 스스로를 태워가며 일하는 것 같아 위태하다고 느꼈다'고 말해주어 나 또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내가 불에 휩싸여 재가 되고 있는걸 몰랐던 것이다. 이제야 물을 뿌리고 옷가지로 잔불을 끄는 내가 너무 허무했다.
퇴사하기 일주일도 쉽지는 않았다. 늘 배가 꽉 차 있는 듯 답답했고, 밥을 먹을 수없었고, 가스라이팅 당한 다른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괴로워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의 마음을 공감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할 거면 그냥 로봇과의 대화가 낫겠다싶을 만큼 그녀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노예처럼 모든 것을 굽히고 있는 것일가....
퇴사 디데이. 대표와의 면담도 대단했다.
그동안 잘해왔다는 칭찬은 둘째치고, 내가 너무 예민하고 약하다며 나의 번아웃을 나 스스로의 문제로 위안하고 싶은 대표의 가스라이팅으로 혼란스러웠다.
대표는 대표일뿐이다. 자신의 회사의 문제점을 제대로 보고싶지 않겠지. 일을 하는 직원들이 우르르 나가는 걸 자신의 탓으로 보고 싶지 않겠지..
하지만 타인을 끝까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회사 경영에는 문제도 없고 자신은 무결한 대표인 것으로 스스로를 위안하고자 하는 모습에 진저리가 났다.
퇴사를 기념하며 증명사진을 찍었다. 어둑해진 거리가 시원하고 상쾌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허무하고 슬펐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뛰었던가.
이렇게 쉽게 놔버릴 수 있는 일과 집단이였는데, 나는 무엇을 위해 나를 태우며 일했던 것일까...
미련은 없지만 어이가 없는 마음.. 누군가는 이해해줄 수 있을까.
이직도 그 무엇도 아직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마음이 아직 안정되지 않아 심리상담도 받고 싶고 누군가와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데 누구와 이야기해 볼 수 있을까. 어쨌든...
이제부터는 고생한 나를 위로하고 앞으로의 내 삶을 행복하게 꾸릴 수 있도록 눈을 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