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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추나무집손녀 Aug 14. 2021

너무 열심히 살면 생기는 병

일본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

올해 여름은 이상하리만큼 덥고 찌고, 무덥고, 정신이 없었다.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순식간에 사라진 여름. 

오래 함께한 존재와의 정말 아무렇지 않게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기다렸다. 포기하고 참아내며 다시금 희망을 가져보는... 그런 반복된 일상을 뚫고) 굿바이, 

그리고 그 순간순간엔 스다 마사키의 작품들과 노래들이 나와 함께했다.  


스다 마사키의 첫인상은 '뭐 저렇게 생겼지?' 그리고 보면 볼수록 유니크하면서도 무심하게 매력 있음을 깨닫고 이리저리 그의 작품을 찾아보다 만난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



정주행을 하기보다는 한 회씩 아껴보고 있는 중이지만, 오늘 보면서 정말 내 이야기를 드라마로 풀어낸 건가 싶은 에피가 있어, 글로 남겨보고자 한다. 


코미디 트리오- 멕베스


이 드라마를 이끄는 주요 삼인방. 심심하고 재미라고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열심히 공연을 하고 대본을 짜는 세 사람, 멕 메스. 세 사람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로 대학 입학 대신 코미디언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이 생활을 한지 벌써 10년째, 그들은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딱 10년만 해보고 관두자'라는 약속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깨닫고, 방황하고 고민하다 단독 공연을 1달 앞두고 해체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여기, 멕베스가 자주 가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멕베스의 팬이 되어버린, 사실은 골수팬에 가까운 여주인공이 있다.

성실하고 똑 부러지는 그녀. 더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을 텐데 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같이 일하는 동료가 말할 정도로 착실한 그녀.

사실 알고 보면, 그녀에겐 아픔이 있다. 


일류 회사에서 일했고, 성실했던 그녀는 회사 동료들이 힘들다며 도움을 청하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돕겠다며 적극적으로 그들을 돕는다. 성실하고, 아주 열심히...

그리고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어느새 동료들의 트러블을 모두 자기가 안고 있는 최악의 결과.

그리고 그 트러블을 떠맡긴 동료들은 어느새 그녀의 등 뒤에서 자신들이 만든 트러블을 모두 그녀의 탓으로 돌리며 그녀를 멀리하고 있었던 것.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열심'에 대한 결과에 혼돈스러웠던 그녀. 하지만 꿋꿋하게 트러블을 정리하고, 최선을 다해 일을 처리한 그녀. 

엎친데 덮친 격. 사귀고 있던 남자 친구조차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고 그녀에게 '결혼'을 이야기하며 이용하고..


그녀에게 남은 것은 '열심과 성실의 잘못된 결과'에 대한 자기 후회와 떨어진 자존감뿐. 


내가 열심히 해서 안된 건지, 열심히 하는 방법이 잘못된 건지 뭐가 뭔지 모르게 되어버렸어요.  
솔직히 지금도 열심히 하는 게 무서워서 힘 뺄 수 있을 때는 빼도록 하고 있어요. 더 이상 열심히 해서 상처 받는 게 무서워서.   

턱, 하고 숨이 막혔다.

꼭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달까. 

쉼 없이 나를 태우며 일했던 결과는 또 다른 책임과 또 다른 비난, 또 다른 업무들....

열심히, 책임을 다 했으니 또 다른 일에도 책임을 얹는... 나의 열심을 이용하는 사람들.

그들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성실하게 살아감으로써 보상받을 것 같았던 내 평온한 삶이 성실함 때문에 무너지는 일은 나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여주인공의 말처럼 열심히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에게 힘을 빼는 일, 그게 뭐 그리 어렵겠어?라고 반문한다면, 말해줄 수 있다.

내 삶의 모든 일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사람에게 그 일은 꽤나 힘들고, 무겁고, 무서우며, 어렵다.


내가 또 나도 모르게 열심히 하고 있을까 봐 무섭고,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그런 나를 누군가가 비난할까 봐 두렵다.  열심히 하는 나를 누가 또 이용할까 봐 두렵고, 열심과 대충의 경계를 잡아갈 수 없어서 괴롭다. 


지금... 내가 그렇게 살고 있어서 더 확연하게 다가오는 그녀의 두려움.



나는 현재, 열심과 대충의 경계선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번아웃을 겨우겨우 이기고, 가장 '열심히'하지 않아도 되는, 내가 내가 아닌 채로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곳을

골라 골라 들어갔다.

억지로 노력하고, 더 많이 나를 태우지 않아도 되는 곳을 선택했다. 

이름 있는 회사, 정말 쉽게 합격이 보장된 곳은.... 어리석다 할지도 모르지만, 거절했다.


불에 타 재가 된 내가.... 또 한 번 불에 휩싸인다면 이젠... 재로도 남아있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달까.

지금의 나는 가끔은 일 때문에 괴롭고, 더 확실하고 큰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잡코리아를 서칭 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매우 평온하며, 일보다는 나 자신에 몰두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거의 대부분 퇴근하면 온전한 나로 돌아온다. 


이렇게 드라마를 보며 리뷰하고, 내 생각을 덧붙이는 것을 봐도 그렇지 않은가.



어쨌든, <콩트가 시작된다>는 첫 1회의 병맛 같은 스토리를 지나면 꽤나 굵직하게 가슴을 때리는 이야기들이 

많은 드라마다. 

매 에피소드마다 콩트와 주인공들의 연결고리가 꽤나 흥미롭고, 쓰리고 아픈 청춘들이 조금씩 나아가고 성장해 나가는 재미를 찾아가는 맛이 있달까.

앞으로 공연 마지막 1달을 앞두고 멕베스 트리오가 어떤 선택과 하루하루를 보낼지...

(코미디언이라는 꿈을 접고, 앞으로를 생각해야 할 그들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그리고 나를 꼭 닮은 여주인공이 '열심히 살아 걸린 병'을 어떻게 극복하고, 어떤 삶을 선택할지... 도 매우 궁금해진다. 일단 지금까지 본 바로는 그녀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의 업무도 꽤나 잘 맞는 것 같은데....

(사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뭘 해도 잘한다.... 나도 회사 패밀리세일 행사나 리빙 페어 기간에... 손님 모객을 너무 열심히 해서... 판매 직해 보라는 소리를.... 흠....)


어쨌든! 


꿈을 위해, 살고자 하는 인생을 위해 열심히 달리는 이들에게 삶은 그리 쉽지도 달콤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나아갈 수 있는 소소한 위안을 주는 드라마를 찾는다면,  <콩트가 시작된다>를 정주행 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보다는 훨씬 어린 친구들이라, 이제야 진짜 나를 찾아가고 있는 나 스스로가 조금 부끄럽지만.

내가 29살이면... 난 진짜 뭐든 미친 듯이 달릴 것 같은데... 와.... 나 나이 왜 이렇게 많이 먹었냐...

(이것도 두려움이자 편견이려나...)


그래도 이보다 더 늦었으면 어쩔뻔했냐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음 에피소드를 플레이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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