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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추나무집손녀 Feb 11. 2021

내상을 입은 나에게

가족들은 말이 없었다.


아무것도 먹지않고 누워있고만 싶은 나를 억지로 일으켜세워 대구행 기차를 탔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아서 조용히 KTX에서 쉬며 내려가고 싶었는데..

내려가는 중에도 갑자기 옆자리에 앉아 멀미가 난다며 마스크를 벗었다 썼다 난리를 피우는 아저씨 덕분에

난생처음 KTX에 신고 전화를 하고, 직원을 기다리며 긴장을 하며 온갖 스트레스를 스스로 주며 나를 혹사했다.

그 아저씨를 피해 자리를 옮기면서도 찝찝하고 불쾌하며 내가 내 자리를 놔두고 다른 칸으로 옮겨야한다는 점에 화가 나기도 했으며, 혹시나 있을지모를 보복이 있을까봐 내심 두렵기도 했다.

(사람이 한번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없다...)


대구에 내려 약국에서 바이러스 소독제를 온몸에, 가방에 뿌리고 할머니 집에 도착해서도 샤워를 하고나서야

간신히 마음을 놓았달까.


일이 바쁘다며 잠깐 얼굴만 보고 늘 볼일을 보러 다니던 손녀의 귀향에 할머니는 아무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뜨끈한 밥에 고깃국, 할머니만의 손맛이 느껴지는 반찬을 밀어주시며 밥을 먹으라고,

밥 먹고 나서는 과일, 차, 온갖 몸에 좋은 것들을 허해진 손녀 안에 넣어주시기만 했다.

본인이 하고자하는 말씀은 꼭 하셔야하는 분인데도 유난히 말이 없으셨다.


잘했다 잘못했다, 힘들었냐 아니냐를 떠나 옛날 이야기들과 미스터 트롯으로 꽉찬 할머니와의 시간은

그저 나에겐 평온의 시간이자 따뜻한 위로 그 자체였다.

하루 이틀, 시간은 별다를 것 없이 흐르는데 쉬는 것이 적응이 되지 않았던 나는 계쏙 시계를 보며

이 시간엔 어떤 업무를 했고, 지금쯤 점심시간이네..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꽤 오래 회사라는 곳에 맞춰 살았구나 느꼈다.

그래도 할머니 곁에서 나는 점점 사람처럼 먹기 시작했고 장염 증세는 씻은듯 사라졌고, 배고픔과 맛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책도 읽기 싫었고 드라마도 눈에 잘 안들어왔지만 그저 시간을 보냈다.

그런 시간이 나에게 필요했고, 절실했다.

본가로 이동해야해서 할머니와 헤어지는 날엔 마치 유치원생이 된듯, 할머니와 헤어지는게 슬퍼서 오는 길에 혼자 울음이 터졌다. 소고기 집에서 혼자 눈물을 뚝뚝.

마음이 정말 많이 약해졌구나 싶기도 하고,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더해져 눈물이 났나 생각했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는 걸 보면 아직도 병이 깊은듯..(ㅎㅎ)


계획에 없던 엄마 아빠와의 캠핑카 여행도 나에겐 좋은 시간이었다.

캠핑 다녀오셔서 얼마 안되었지만, 내 갑작스러운 퇴사가 나에겐 얼마나 큰 힘듬이였을지 짐작하고 두 분이 피곤한 와중에도 다시 준비하신 캠핑카 여행.

그런 속내는 모르고 나는 처음엔 무기력으로 꼼짝하기 싫었고, 도착해서는 멋지고 좋은 풍경 앞에서 나의 기분이 다운되어 있는 그 자체가 싫어 슬펐다.


아름다운 풍경과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바다 앞에서 나는 '개망해라!! 나는 잘살거다'를 외치며 울었다.

우는 이유는 파악하고 싶지 않았다.

모르지 않는다. 다양한 이유가 뒤섞여있었던 탓이겠지.

좋은 풍경 좋은 먹거리 좋은 소리들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어도 좋은데 마냥 행복하지 않음은 너무나 슬픈 일이었다.


마냥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고, 걱정따위 끼치기 싫었는데..

서른도 훌쩍 넘은 딸은 울산의 바다 앞 캠핑카 앞에서 그 동안의 힘듬과 서러움을 터트리며 두 눈이 벌개지도록 울었다.


내 울먹임 섞인 이야기를 듣던 아빠의 한마디.

'니 옆에 좋은 멘토가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너한테 멘토가 없었구나'


아 그렇구나.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힘듬을 도와달라고, 들어달라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어볼 사람이 없었구나...


회사에서도 늘 자기 자리만 챙기기 바쁘고 기계처럼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 상사들.

힘들다고 말하면 나도 힘들다고 말하는 나의 연하의 남자친구.

죽겠다고 말하면 더 죽을것처럼 말라가는 나의 친구들..

그리고 늘 혼자 해결하려는 습관때문에 옆과 뒤를 돌아볼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었던 나 자신.


캠핑을 다녀와서 많은 울분과 눈물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없다고 하지않던가.


이렇게 회사 다니다가는 내 스스로가 썩어지고 큰 병이 날 것같아서 퇴사했는데,

가족들의 사랑으로 인간으로 돌아오고나니 이제 어떻게 살지,, 이직을 해야할지가 막막해진다.


힘들어 죽겠는데 연락온 헤드헌터에게 이력서를 작성해 전달하고, 돌아온 대답은 '잦은 이직으로 서류 탈락'.

아니 아저씨... 정말 그 이유가 맞나요?? (그 헤드헌터는 처음부터 느낌이 별로였다)

그 외 면접을 보고싶다고 연락온 곳들에게는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 계속 '지방에 있어서 면접이 어렵다'고 대답하고 그저 흐르는 대로 먹고, 자고, 일하는 시간을 보낸 주제에..


걱정은 왜 그렇게 많으며 답도 없는 유튜브를 보며 왜 너랑 같은 사람이 있는지 이해받고 싶어 하는건지..


아까운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사람이란건 참 간사해..

나라는 인간은 어떻게 이렇게 마음 쉴틈 없이 고민을 만들어낼까.


그래도 이렇게 망가져 물렁해진 나라도...
내 가족들이 있어서... 걱정말고 일단 쉬라고 하는 친구들과 지인들이 있어서..
작업하다 내가 없어서 허전했다는 일로 만난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그래도 인간답게, 지금 이 글이라도 쓸 수 있게 조금씩 나는 복구가 된다.



고맙고 미안한데, 미안함은 빼라고 한 엄마의 말이 생각나서

또 살짝 눈물이 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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