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맛있게 먹겠습니다!

노릇노릇 계절이 구워지는 시기

by 이룰성 바랄희

지글거리는 더위가 지나가고 그런 더위쯤은 언제 있었냐는 듯 재킷을 꺼내는 계절이 다가왔다. 매년 느끼는 거지만 점점 봄과 가을의 종적이 묘연해진다. 그들만의 뚜렷한 개성을 꽤 마음에 들어 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조용히 왔다 사라지는 가을을 더 절실하게 느끼고 싶어졌다. 가을을 음미하고 싶다.


하지만 뻔한 건 싫다. 단풍놀이, 등산, 전어 섭취 등등 가을을 떠올리면 대표적으로 뜨는 해쉬태그들을 제외하고 우리는 가을을 더욱 뚜렷하게 즐길 수 없는 걸까?


글을 쓰던 중 멈추고 따뜻한 커피잔을 양손에 움켜쥐며 창 밖을 바라봤다. 커피잔의 적절한 온도는 나의 손을 느긋하게 만든다. 통유리로 되어 있는 카페는 밖에 있는 큰 나무가 노을빛에 적셔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빛이, 세상을 물드는 초록빛과 주황빛의 묘사가 황홀하다. 어떤 물감도 이런 묘사는 불가능할 것. 피카소도 이런 묘사는 불가능할 것. 가을이 선사하는 예술이다.


그렇다. 나도 모르게 가을을 음미하고 있었다. 더 이상 연둣빛이 아닌 짙은 녹색을 띠는 나무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는 일.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다가오는 가을을 양팔 벌려 반기는 일. 나는 가을을 몸소 환영하는 중이었다. 딱히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가을을 느낄 수 있었다. 가을이 주는 것들을 반길 준비만 되어 있다면.


우리 엄마는 바짝 마른 단풍잎더미 위에서 깡충깡충 뛰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는 걸 좋아하신다. 그녀만의 가을 즐기기 비법이라 생각한다. 다가온 계절을 미소로 반기고 마음껏 누리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거스를 수 없는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반기는 행위, 참 건강한 모습이다. 밤도 맛있게 구워 먹고, 노란색과 빨간색으로 물든 나무들을 한 참 동안 눈에 담고, 차갑지만 상쾌한 공기를 힘껏 들이마셔볼 것이다.


“이번 가을도 맛있게 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