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은 최고의 정화공간
누구나 그러하듯이 갑자기 깊은 늪에 빠지듯 우울해지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 우울은 감기처럼 순식간에 찾아오곤 한다. 가끔은 독감처럼 심하게 걸리기도 하고 가끔은 잘 자고 일어나면 금방 나아지는 가벼운 감기처럼 걸린다.
그렇게 우울이나 이별, 잡다한 고민들, 나를 힘들게 하는 생각들이 파도처럼 밀려들면 나는 곧장 욕실로 향한다.
욕실은 나에게 정화공간이다. 씻기 위해 큰 준비가 필요한 것 마냥 들어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큰 결심이 필요하지만 일단 들어가고 나면 후회란 없다.
좋아하는 온도에 머리를 적시는 순간, 고민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내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는 “뇌를 꺼내서 시원한 폭포가 흐르는 계곡물에 씻었다가 다시 머리에 넣고 싶어.”이다. 목욕할 때 머리를 처음 적시는 순간이 딱 그 느낌이다.
머리를 적시고 몽글몽글 거품으로 머리를 감고 트리트먼트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준다. 내 머리카락이 호사를 누리는 동안 나는 부지런히 양치질을 해준다. 양치질까지 해주면 온몸이 민트 향으로 물들면서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그만큼 목욕재계에서 양치질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다. 이제 바디워시로 몸 구석구석을 아껴준다. 매일 나를 위해 힘써주는 이 몸뚱이. 고마운 마음을 담아 더 열심히 닦아준다.
다 씻고 나면 샤워기에 몸을 맡겨본다. 이 시간이 가장 중요한데 정화시간의 절정이기 때문이다. 샤워기가 뿌리는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기도, 어쩌면 그 고민들의 해결방법을 생각하기도, 어쩌면 그 고민들이 생각해 보면 별 거 아닐지도 모른다는 주문을 걸기도 하는 시간.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정화된다.
고민들이 증발한다. 우울이 도망친다. 그렇게 또 살아간다. 욕실을 나와서 생각한다.
‘아, 역시 목욕하길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