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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ho Kim Aug 13. 2016

회식은 필라테스로 하시죠

에잇퍼센트의 건강법

몸이 뻣뻣해 요가 같은 걸 하면 좋겠는데 여자만 다녀서 좀 그렇다

준호 님께 했던 말이 발단이었다. 쿨한 준호 님은 '요가 해봤는데 여자들만 있어도 괜찮다. 어차피 아무도 신경 안 쓴다.'라고 말해줬지만 게으른 나는 운동 자체를 미뤄왔다. 몇 달 후에 진 님과 혜련 님이 운동을 해야겠어서 필라테스를 알아본다고 할 때 재밌겠다며 자연히 네 명의 필라테스 팀이 결성되었다.


필라테스 팸플릿을 모으며 가자

광화문에는 필라테스가 매우 많은데, 네 명 그룹수업이 가능한 데는 별로 없었다. 여러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에잇퍼센트의 사관(史官) 혜련 님은 방문하는 곳마다 팸플릿을 전리품처럼 수집했다. 낯을 가리는 혜련 님은 말을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대신에 상담을 받는 자리에서 광(光)을 팔 듯 대여섯 개 타사 팸플릿들을 바닥에 늘어놓는 대담한 전략을 구사하였다. 상담 선생님은 근육이 발달한 남자 트레이너였는데, 앉자마자 낯가리는 청순한 여자의 압도적인 패에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 절경이었다.


블러핑(bluffing)은 망설이지 않고 과감하게. 이미지는 내용과 무관합니다. 출처: flickr.


원래 회당 2만 5천 원인데, 10%를 깎아 드릴게요

협상이 시작되자마자 부담을 느낀 트레이너님이 선제시를 하였다. 한 명 당 24회 수업 54만 원씩 결제하면 5개월 동안 헬스/사우나도 마음껏 쓸 수 있고, 각자 와서 8인 그룹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것도 명당 24회씩 주겠다는 옵션이 붙었다. 괜찮은 조건이었지만 협상에 있어서 선제시만큼이나 나쁜 것이 즉답을 하는 것이다. 노련한 준호 님이 "괜찮네요. 좀 더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뒤로하고 경쾌하게 나왔다. 이때가 6월 말이어서 트레이너님은 실적이 필요했던 것 같고, 우리 쪽이 네 명이나 되어서 욕심이 났을 것이다.


현금으로 결제할 테니 할인해주세요

다음날 전화해 현금으로 결제할 테니 할인해달라고 했다. 10% 할인된 가격이 사실 현금가였다고 하길래 "아... 그런가요... 사실... 다른 세 명은... 카드 할부로... 할 거라..."라고 말을 줄일 수 있는 곳에서는 모두 줄였다. 트레이너님이 바로 "부담되신단 말씀이시죠? 최대한 맞춰드릴 테니 만나서 이야기하시죠. 제발 다시 와주세요."라고 말씀을 하셨다. '제발'이라는 단어에서 승리를 확신하게 되었다. 결국 두 번째 협상에서 20% 할인받아 명당 24회 48만 원에 계약이 체결되었다. 위의 옵션 모두 다 포함된 가격이었다.


당신은 경도비만입니다

인바디검사에서 경도비만 판정을 받았다. 잘 먹는데 몸은 왜 이리 말랐냐는 이야기만 들어왔어서 나는 평생 마를 줄 알았는데, 가랑비에 옷 젖듯 살쪄왔다. 문득 살진 몸에 저질러온 짓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충격을 받아 "아 나 경도비만이네."라고 떠들고 다녔더니 다들 "나도 경도비만이지."나 "나는 고도비만인데?"라는 반응도 흥미로웠다. 비만한 사회에서 나만 몰랐던 거구나.


눈으로 체지방률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출처: builtlean.com.


필라테스는 뭐 명상이나 하는 거 아닌가요

개념이 심하게 없던 나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운동이 얼마나 힘들겠어'라는 생각이었는데 시작한 지 10초 만에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땀이 비 오듯 나고 온몸이 후들거렸다. 아 이건 군대에서 하던 PT보다 힘들구나. 몸은 정말이지 엉망이었다. 좌우 비대칭도 심하고 목, 어깨, 등, 골반 등등 뼈들이 제대로 맞춰져 있는 곳이 없었다. 근력도 매우 부족해 뼈 위치를 잡아주기도 힘든 상태였고 유연성이 필요한 동작은 흉내도 낼 수가 없었다. 참아도 비명이 새어 나왔다. 선생님은 "남자분들이랑 여자분들이랑 따로 하셔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같이하셔도 괜찮겠네요."라며 (비)웃었다. 그러고 보니 좌식 식당에 앉지도 못하는 것부터 큰 문제였지. 몸이 크게 아프지 않아 몰랐는데 정말 이제라도 시작해서 다행이다.


에잇퍼센트 필라테스 시간. 사진을 기꺼이 제공해주신 준협님과 혜옥님, 문수님, 세바님께 감사드립니다.

처음에는 일에 집중을 못 할 정도의 근육통이 왔다. 4회가 지나서야 개운해지고 체력과 집중력이 높아졌다. 건강이 제일인데 무엇을 위해 정신없게 살아온 걸까. 에잇퍼센트엔 바로 또 다른 필라테스팀이 결성되어서 직원 28명 중 8명(남자 5명, 여자 3명)이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필라테스가 재활을 위해 고안된 운동이어서 자세교정과 필요한 근육들을 키우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어 다들 만족도가 높다. 정신없이 야근하는 도중에 다 같이 일을 잠깐 멈추고 운동하러 가는 것도 운동의 허들을 낮춰준다. 회식은 필라테스로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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