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대낮의 실종
"엄마, 근데 벤 어디 갔어?"
2015년 8월 말 정오. 느긋한 점심을 즐기고 있었다. 엄마와 과일 몇 쪽도 나눠 먹으며, 한가했다. 20여분이 지났을까 묘한 정적이 흘렀다. 식탁 밑에 있던 녀석이 없어진 것. 내 방 침대에도, 아빠 방, 욕실, 탁자 아래 어느 곳에서도 벤은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활짝 열린 현관문이 눈에 들어왔다.
벤이 사 라 졌 다.
황급히 슬리퍼를 신고 뛰쳐나갔다. 이때만 해도 큰 걱정은 안 했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는 아빠의 말도 있었고, 부르면 오겠지 하고 생각했다. '가봤자 주차장이겠지'.
20분이 더 지났다. 입이 마르고 목청이 높아졌다.
"베에엔."
300여 세대 동네 곳곳을 뒤졌지만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외출한 아빠와 근처에 사는 누나에게 전화를 돌렸다. 다들 한 걸음에 달려왔다.
누나 아빠가 오기 전까지 나는 백방으로 뛰었다. 갓길을 달리고, 풀섭을 뒤졌다. 급히 신은 슬리퍼가 발등을 밀어내고 살갗을 벗겨냈다. 30분이 지나자 면 티셔츠는 흥건히 젖어 있었다.
수소문 해보니 두 명이 답했다. "허옇고 늙은 개 한 마리가 지나가긴 했어요. 어쩌나. 한참 됐는데." 그래, 난 녀석이 사라진 걸 수십 분 지나서야 알았다. 섭씨 30도가 훌쩍 넘는 이 더위에 어딜 간 거야. 다리도 저는데…. 조바심에 가슴이 뛰었다.
두 번째 행인이 알려준 곳으로 향했다. 큰 개 두 마리가 마당에 묶여 있었다. 해코지라도 당했을까 싶어 개집도 훑어봤다. '다행히' 거긴 없었다. 술래 없는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점점 불안해졌다.
안 되겠다 싶어서 차를 몰았다. 누나가 동쪽, 내가 서쪽을 맡았던 것 같다. 3kg 남짓 조그만 개를 찾으러 차 두 대가 출동했다. 그만큼 급했다.
그 무렵 아빠가 성당 모임에서 돌아왔다. 아빠는 엄마에게 이렇게 얘기했단다. "금방 찾아올게."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여전히 벤을 찾고 있었다. 집에서 500여m 떨어진 고가 아래였다. 양쪽 창문을 열고 차 전방과 양옆을 수색하던 중 문자 한 통이 왔다.
'ㅣㅣ찾랐다'
(3분 후)
'벤찾았다'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곤 눈물 콧물을 쏟았다.
돌아온 녀석은 그새 수척해져 있었다. 그 더위에 물 한 모금 못 마셨으니 어련할까. 네 다리마다 도깨비풀, 풀떼기가 잔뜩 붙어 있었다. 제 키보다 몇 배 높은 풀밭을 헤맸을 테지. 노안에 백내장까지 온 녀석은 14살 무렵부터 앞을 잘 못 봤다.
벤은 어디 있었을까. 집 근처 천변 끄트머리를 따라 뛰고 있었다고 아빠가 말했다. 나선형 길을 따라 집 반대편으로 곧장 가고 있었다는 것. 집에서 꽤 먼 거리였다. 몇 분 몇 초만 늦게 봤더라면, 다른 골목으로 들어섰더라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벤의 첫 '가출'은 막을 내렸다. 15년 만의 첫 일탈.
헤매는 동안 녀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집이 왜 안 나오지' '아빠는 어디 있을까?'(벤은 아빠와 누나를 가장 좋아했다 나는 세번째) 하고 조바심 내지 않았을까. 더 궁금한 건 눈이 시원치 않은데 어떻게 보고, 택했냐는 것이다. 15년을 녀석과 함께 하면서 이런 생각은 처음 해봤다. '녀석은 세상을 어떻게 볼까'.
책 '관찰의 인문학'을 보면 열 한 번의 산책이 소개된다. 아들, 지질학자, 타이포그래퍼, 일러스트레이터, 곤충 박사, 도시사회학자와 뉴욕을 걷는 저자의 다소 색다른 경험을 적었다. 마지막엔 반려견 '피니건'과의 산책이 등장한다. 11장의 부제는 '촉촉한 코로 탐색하는 세상'. 그래. 녀석이 보는 세상은 눈높이부터 색감, 냄새 모든 게 다를 테지. 벤을 되찾고 이런 생각을 해봤다.
그날 저녁 벤을 데리고 근처 마트에 갔다. 조수석 발치에 있던 녀석은 오는 길 뻗어버렸다. 평소엔 마을 입구만 보여도 짖더니,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그날 만큼은, 누나도 나도 그저 녀석을 지켜보기만 했다.
벤과의 5600일 -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