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녀석의 간식들
2006~2015년 얘기다. 단지에 자주 가던 상점이 있었다. 과자와 식료품을 주로 파는 7~8평 크기 동네 수퍼였다. 주로 산 건 맥주와 천하장사 소시지. 간식은 벤 몫이었다. 늦은 귀갓길 개당 300원 하던 녀석의 간식 세 알, 맥주 한 캔을 들고서 집문을 열곤 했다.
현관에 들어서면 벤은 짖었다.(가족들이 그 소리를 듣고 '어 헌이 왔구나' 했을 정도. 문고리만 돌려도 왈왈. 몰래 새벽 귀가라도 할라치면 번번이 발각됐다) 소시지 냄새가 풍겼는지, 녀석은 봉지만 봐도 컹컹댔다.
맥주를 냉장고에 넣을 새도 없었다. 신발을 벗음과 동시에 소시지를 까야 했다. 노오란 껍질을 감싼 빨간 띠를 당기면 분홍 속살이 나온다. 그걸 세 등분 해서 녀석에게 던져줬다.
여기서 입에 넣어주지 않은 이유가 있다. 먹이를 주다가 물린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육류는 훨씬 더 했음) 내 손가락을 고기로 봤는지 어쨌는지, 몇 번을 깨물린 후론 30cm 거리를 두고 던져줬다. 그런데도 꺼엉충 뛰어올라 낚아채 가곤 했다.
고작 명태살로 만든 어육 소시지인데, 녀석은 뭐가 그리 맛있는지 이빨질 너댓번 만에 꿀꺽 삼켰다. 그렇게 두 세개를 금세 해치웠다.(뒤늦게 알았지만 소시지는 개에게 좋은 간식이 아니다. 햄과 소시지의 염분이 해가 된다고)
다른 간식도 먹여봤다. 녀석은 통조림보단 직접 조리한 닭고기를, 삶은 계란보단 얇게 부친 후라이를 좋아했다. 토스트에 넣을 계란을 적게는 4분의 1, 많게는 3분의 1씩 녀석과 나눠 먹었다. 입맛이 까다로워서 식으면 거들떠도 안 봤다.
데친 브로콜리도 잘 먹었다. 우리집 식탁에 브로콜리가 처음 등장한 2000년대 초부터 벤도 맛을 들였다. 녀석은 아빠 엄마가 나눠준 덩어리를 잘 받아먹었다. 턱을 요란하게 움직이며 단숨에 해치웠다. 알고보니 브로콜리는 양상추, 시금치와 함께 반려견의 소화를 돕는 채소라고.
그래도 소시지 만한 게 없었다. 2000년 엄마 외투 주머니에 담겨 온 녀석이 팔뚝 크기로 자라고, 털이 무성해지고 근육이 붙고, 말년에 허리가 굽고 치아가 빠져도 소시지는 줄곧 좋아했다.
소시지는 아빠 시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아래는 2012년작 '복날'.
복날(伏日)
집 건너 보신탕집은
종일 사람들로 북적였다.
뒷집 아저씨도, 앞집 아주머니도
기어이 복날을 기념하러 갔다.
복(伏)을 나누면 사람(人)과 개(犬)인데
사람인지 개인지, 개가 사람인지 모를 세상에
복(伏)을 나누려거든 복(福)이나 나누시게
한세상 가면 버릴 몸인데 뭘 그리도 위하시나.
올 복날엔
아랫집 검둥이가 유난히도 따라다녔다.
아랫집 아저씨를 따라온 유기견이다.
일흔 된 아저씨는 그놈을 먹이기 위해 산다고 했다.
올 복날엔
아랫집 아저씨와 검둥이가 소풍을 갔다.
검둥이가 좋아하는 200원짜리 소시지를 든
아저씨의 손등을 검둥이가 핥고 있었다.
벤과의 5600일 - 프롤로그
벤과의 5600일① 대낮의 실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