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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Oct 19. 2019

회사 때려친다.

 곧 있으면 연말이 오고, 직장인에게 연말은 곧 인사이동이라는 말과 같다. 내가 승진을 할지, 못할지, 우리 팀장은 다른 곳을 갈지 아닐지, 본부장이 바뀔지 아닐지, 사장이 바뀔지 아닐지 등등 여러 가지 소문들이 무성하고 추측들이 난무하는 시기이다. 


 아무리 정규직으로 일을 하고, 정규직은 노동법에 의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고용이 정년까지 보장된다고 해도, 이는 그저 법조문에 있는 이야기일 뿐이다. 직장인들의 낙은 승진과 급여인상이다. 급여는 승진과 함께 자연스럽게 인상이 된다. 그러니 다들 내가 내년에 승진하는 케이스인데 승진할지, 그렇지 못할지 걱정도 하고, 인사권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아부도 심하게 한다.


 직원들이 이럴 정도인데, 임원들은 이 보다 더 하다. 과연 내가 내년에도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 내년에 CEO는 누가 될지, 내가 혹시 CEO로 승진할 수는 있는지 등등 임원도 직원들처럼 승진과 자리보전, 자신의 상사가 누가될지에 대해서 나름 고민도 해보고 생각도 해본다. 이 과정에서 여러가지 소문이 돌기도 한다. 소문의 근원지를 찾아가 보면 대부분 그 소문은 그 소문의 당사자가 그 근원인 경우가 많다. 


 직장인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아니고는 굉장히 큰 의사결정이다. 나는 여러 번 회사를 그만두고, 그 그만 둔 횟수만큼 새로운 회사에 입사를 해서 그런지 그렇게 큰 의사결정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거에 회사를 처음으로 그만 둘 때는 매우 큰 의사결정이었다. 친한 이들과 상담도 해보고, 혼자 생각도 많이 해봤다. 일단 내 입에서 말이 나온 이상 그 말은 소문으로 돌 가능성이 높다. 결국 나는 그만 두지도 않았지만 내가 그만 둔다는 소문이 회사에 났고, 나의 팀장과 면담까지 하였다. 


 우리회사 임원이야기를 하면 소문이 많다. 어떤 임원이 그만두고, 누가 새로 오고, 보직이 어떻게 바뀌고 말들이 너무 많다. 하루 종일 그 말들만 들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런 이야기를 엮으면 암투와 모략이 난무하는 기업소설도 쓸 수 있을 정도이다. 내가 듣는 대부분의 말들은 어떤 사람이 그만 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문의 근원이 해당 당사자가 그만둔다고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삼오오 모이면 정말 그 사람이 그만 두면 누가 후임으로 오겠냐는 말을 서로 나누곤 한다. 


 과연 임원자리를 더 높은 사람이 나가라고 하지 않는 이상 자기 발로 나갈까? 내가 지금은 팀장이다. 팀장이 중간관리자로 팀원과 임원의 연결 역할을 한다. 팀원과 팀장 둘 중에 무엇을 할 것이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난 팀장이다. 팀장이 팀원보다 회사에서 대우도 더 좋고, 권한도 더 많다. 이런 좋은 자리를 왜 내가 스스로 그만두나? 팀장이 이럴 정도이면, 임원이면 얼마나 좋은 자리인가? 


 자신의 스케줄에 맞춰 중요한 회의를 주재하고, 회사에서 차도 나오고, 당연히 급여도 일반 직원 보다 많다, 권한도 많고, 자기 방도 있고, 회사 복도를 다니면 자기가 먼저 고개를 숙여서 인사하는 것 보다 상대방이 고개를 숙여서 인사하는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집에서도 못 받는 대우를 회사에서 받는데, 왜 그 좋은 자리를 스스로 그만두나? 그리고 그런 자리를 어떻게 올라왔는데? 짧게는 20년, 길게는 25년 이상을 회사를 위해서 헌신하고, 운도 따라줘야 하고, 위에 상사들 비위를 맞추면서 그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그 자리를 그냥 그만둬? 나라면 내쫓을 때까지 다닌다. 임원보다 더 좋은 자리가 있어서 그리로 가지 않는 이상 난 안 그만 둔다. 


 결론은 정말 자기가 그만두고 싶어하는 사람은 사표를 내지 말로 그만둔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차기 임원 후보들은 ‘OO 상무님이 그만두시면 안되는데’라는 이야기도 하는데, OO상무님이 그만 두면 그 자리가 공석이 되고, 차기 임원 후보자가 임원이 될 수도 있는 기회인데, 정말 그걸 몰라서 그런가? 차기 임원 후보자는 영원히 임원 후보자로 남고 싶어서 그런가? 회사 다니면 이처럼 서로 뻔히 아는 말들을 행동이 없어도 믿어 버리는 어리석은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그래서 회사는 가끔은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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