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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Nov 16. 2019

슬픈 11월

 MBA 프로그램을 2016년 5월에 마치고, 같은 해 11월 초까지 미국에서 정착하기 위해서 정말 많은 구직 활동을 했다. 졸업 후 6개월 동안 입사 지원한 회사, 면접을 본 회사들의 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구직활동의 수보다, 면접보다 월등하게 많은 횟수였다. 그리고 그 노력도 지금까지 와는 비교할 수 없는 구직 노력이었고, 앞으로도 구직활동을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없을 것이다.


 귀국 한지 벌써 3년이 되었다. 최근에 뭔가 모르게 기분이 울적하고 허전 했다. 이 모든 것이 단풍이 들고,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적 변화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3년전의 아픈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전 세인트루이스에서 시카고까지 가는 차 안에서 윤재는 KJ를 앞으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계속 울면서 갔고, 나는 윤재의 우는 소리만 들으며 아무 말없이 운전만 했다. 시카고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새벽같이 일어나 시카고 공항에 가서, 수속을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가족 모두가 빠짐없이 다 함께 같은 비행기를 타 보기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 나란히 같은 자리에 앉고, 이야기하며, 웃으며, 자며, 놀며 그렇게 오다 보니, 창밖에는 한국이 보였고, 어느새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를 마쳤을 때만 해도 기나긴 여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중 나온 처제 부부를 만나니, 곧 현실임을 알게 되었다. 밤 늦게 장인 댁에 도착했고, 다른 사람들은 서로 오랜만에 만나서 다들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지만, 난 정말 앞이 캄캄했다.


 지난 몇 년간의 긴 유학 생활이 마치 꿈만 같았고, 마주하기 싫은 최악의 현실이 나를 기다렸다. 앞으로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뭘 할지 막막했고, 의지할 곳이 없어서, 처가에 신세를 진다는 생각이 나를 너무 괴롭게 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장인 댁 현관문을 마주하고, 그 문이 열리는 그 순간 내가 느낀 비참함이 지금도 생생하다. 앞으로 살면서 이 그 순간이 가장 비참했으면 좋겠다. 내가 견딜 수 있는 비참함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 모르지만, 그 이상이면, 감당이 안될 것 같다.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설 때, 하늘이 매우 흐렸다. 토요일 오전 카페에서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즐겁기도 할 텐데,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즐겁지가 않았고 기분이 그저 그랬다. 오늘은 3시간 동안 내 앞에 한 명만 앉아 있었다. 내일은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장인 댁 현관 문을 마주한 그 순간 보다 비참하지는 않았다. 빨리 11월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겨울도 아니고, 가을도 아니고, 애매한 그 상황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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