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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Nov 19. 2019

나만 신경쓰고 살고 싶어

 고등학교 1학년 내내 아파서 골골대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죽는 것에 대해서 매우 아쉬워했고, 2학년이 되어서 건강도 되찾았고, 친구들하고 같이 공부도 하고, 같이 놀고 정말 평화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나에게 행복은 오랫동안 주어지지 않았다.  


 학교를 마치고 가게에 오니, 남동생이 가게를 보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또 두 분이 싸우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집에 가서 내가 싸움을 말릴 것도 아니었고, 두 분 싸움도 보기 싫어서, 나도 동생하고 같이 가게에 있었다. 하튼 그러고 며칠이 지났는데, 아버지가 계속 안보였다. 


 처음에는 재미삼아 친 고스톱에서 아버지가 만원을 잃었고, 그 돈을 복구한다고 더 쳤는데, 십만원을 잃었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10만원을 벌려면 당시 100원짜리 껌을 몇 개를 팔아야 하는데? 껌 하나 팔면 20원이 남는데, 도대체 몇 개를 팔아야 하는지 계산이 안된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 10만원을 찾아보려고, 고스톱을 더 하셨고, 이제 100만원을 잃었다. 그 100만원을 팔려면 가게에 있는 껌을 다 팔아도 벌 수 없는 돈이다. 그 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가 더 심하게 싸우시고, 아버지는 그 돈을 못 잊고, 어머니는 그 돈 없다고 생각하자고 하셨다. 내가 아는 발단은 이것이었다. 


 몇 달 동안 아버지가 놀음을 하셨고, 그 것도 영화 타짜에서 보는 하우스같은 데서 하셨다. 어머니가 이렇게 돈을 버릴 거면 차라리 좋은 집에서 살자며,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갔고, 가전제품도 새걸로 싹다 바꾸었고, 메이커 가구도 사 주셨다. 그래도 아버지는 계속 놀음을 하셨고, 나까지 나서서 말리고, 아버지랑 매번 싸우고, 완전 집안 꼴이 개판이 되었다. 이게 한 6개월은 지속된 것 같았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니, 아버지는 수중에 있는 돈을 다 잃었고, 놀음이 끝났다. 놀음해서 패가 망신했다는 이야기 때문에 아버지는 창피해서 그 동네에서 장사를 못한다고 하셨고, 아버지하고 어머니는 다른 장사를 하시려고 안산으로 이사 가셨고, 나와 동생들은 교육문제로 인해 서울에서 살았다. 이렇게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빛을 지고, 있는 돈을 다 까먹었어도, 새로 가게 차릴 돈은 있었나 보다. 내가 아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 생각보다 더 재력가였다. 그렇게 부모님은 새 출발을 하셨고, 나는 짐만 가득 안고 살았다. 빨리 독립 해야지 라는 생각이 더 커졌고, 더디게만 먹는 내 나이가 한스러웠다. 타산지석이랄까,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20살도 되기 전에 너무 많은 세상풍파를 겪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내 기준으로 이해 안가는 얘들이 가출하는 얘들이었다. 알고 보면 집안도 유복하고, 부모님도 사이 좋고, 집안에 문제가 없는데, 걔들은 그냥 가출을 했다. 그 집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집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내 친구들인 그 자신들이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부럽다. 넌 너만 잘하면 집안이 평화롭잖아. 넌 너 자신만 신경 쓰면 되잖아. 나도 나만 신경 쓰고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Suna로 인해서 난 나만 신경 써도 되는 것 같다. Thank you S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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