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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Nov 19. 2019

젊어서 고생도 안하는게 좋다

 중학교 시절 우리집은 과일과 공산품을 같이 파는 슈퍼를 했다.  설, 추석이 가장 큰 대목이고 상당히 많은 돈을 그 짧은 기간동안 번다. 명절때에는 친지를 찾아 뵙고, 어르신을 찾아 뵙는다. 그런 자리를 누가 빈손으로 가겠는가? 꼭 선물 세트를 들고 간다. 가장 많이 팔리는 선물세트가 과일박스이다. 추석에는 포도, 배, 사과가 많이 팔렸고, 설에는 배, 귤, 사과가 많이 팔렸다. 손님들이 박스채로 사가면서 배달을 해달라고 하면, 내가 주로 배달 다녔다. 


 사과 박스 겉면에 10kg이라고 써져 있었고, 배는 15Kg이었고, 귤도 10~15Kg이었다. 이거를 어깨에 들쳐 메고 짧게는 500미터 길게는 1킬로도 넘게 걸어서 배달을 했다. 내가 사는 곳이 백종원이 나오는 프로에  있는 포방터 시장이었고, 거기는 산 위에 집들이 그렇게 많았다. 경사진 곳을 걷기만 해도 숨이 그렇게 차오르는데, 15살, 16살 중학생이 그 무거운 거를 어깨에 짊어지고 올라갔다. 하루에 20번도 더 넘게 배달을 다녔다. 옆집 과일 가게는 손수레를 사서 그 위에 얹고 다녔는데, 우리 부모님은 왜 손수레를 안 샀는지 모른다. 손수레가 있으면 누구나 큰 힘 안들이고 배달다닐 수 있는데. 


 그렇게 명절기간에는 가게에서 일을 했고, 명절이 끝나면 수고했다고 아버지가 용돈을 좀 주셨다. 그때는 젊고, 혈기왕성해서 힘들어도 금방 피로가 회복되었고, 명절이 끝나고 받는 그 돈때문에 힘들어도 견딜 만했다. 

내가 중학생때는 편의점이 없었고 24시간 영업하는 곳도 없었는데, 우리집은 꼭 토요일 밤에는 문을 안 닫고 24시간 영업을 했다. 일요일 새벽에 아버지가 과일을 사러 도매시장에 가야 하고, 그 시간에도 가게 문이 열려 있어서, 누군가는 가게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그럼 보통 새벽 5시에서 6시 사이에 아버지가 집으로 전화를 거신다. 그리고 그 전화를 가장 먼저 받는 사람이 가게에 나가서 가게를 본다. 나와 동생들은 전부 학생이고, 주말에 얼마나 늦잠자고 싶을까?


 전화벨이 울리면 서로 안 받으려고 못 들은척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전화를 받아야 한다. 다 안 받으면 모두 아버지에게 혼나니까. 주로 여동생과 내가 번갈아 가며 전화를 받고, 눈도 잘 안 떠지는 상태에서 새벽에 나가서 가게를 지켰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농구 붐이 불었고, 일요일 새벽에 근처 대학교 농구장에서 농구 하러 가는 것이 내 1주일의 낙 인데, 농구도 마음대로 못했다. 그렇게 가족 모두가 다 같이 고생하면 돈을 벌었는데, 그걸 몽땅 허공에 날리니, 내 상실감과 분노가 얼마나 컸을까. 


 그 당시에는 왜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을 귀찮게 할까. 다른 집 부모님은 전부 회사 다니는데, 다른 집 부모님은 얘들 손을 안 벌리는데. 우리집은 그런게 당연한 것이 되었다. 난 지금 회사를 다니고, 내가 돈 버는데 있어서 윤재에게 어떤 도움도 요청 하지 않는다.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으면 낳지를 말아 야지.’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지’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마음 깊은 곳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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