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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Nov 19. 2019

돈 버는 재미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유럽 배낭여행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때 누군가의 배낭여행기를 읽었고, 그 걸 보며 대학생이 되어서 여름방학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가면 너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학교에 입학하자 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이 아르바이트였다. 과외도 좋았지만, 난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었다. 


 술집, 카페에서도 일을 했다. 어머니가 그 시간에 공부를 하던지, 혹은 가게일을 돕던지 해야지 왜 별로 돈도 안되는 남의 집 일을 돕는다고 나를 못 마땅하게 생각했다. 주말에도 아르바이트를 했다. 5월의 여름에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매주 일요일 하루만 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5월은 나무들이 녹색이고, 여름이 오는 계절이다. 더구나,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라니, 너무나 좋았다. 아르바이트 하는 대부분이 내 또래의 남자, 여자 학생들이라서, 더욱 좋았다. 점심, 저녁은 공짜로 주었고. 


 많은 돈을 받지는 않았지만, 사람들하고 그렇게 지내고 어울리는게 좋았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도 잠깐 이었다. 내 인생에 무슨 행복을 바랄까. 부모님이 왜 남의 집 일을 돕냐고, 당장 그만 두고, 안산에 있는 가게일을 주말에 도우라고 하셨다. 안산에서 부모님이 가구 장사를 하셨고, 1995년은 경제가 좋아서, 장사가 상당히 잘 되었다. 주말에 안산에 가면 내가 하는 일은 약 1,000장 혹은 2,000장 정도의 우리 가게 전단지를 돌리는 일이었다. 그 전단지를 다 돌리려면, 아파트 단지도 돌아 다니고, 빌라 단지도 돌아다녀야 했다. 어느 단지든 어디는 경비원이 있어서 외부인 출입을 못하게 했고, 몰래 가서 돌리고 오던가, 중간에 죄송하고 나와야 했다. 


 광고 전단지를 다 돌리면 짧게는 3-4시간 길게는 5-6시간도 걸린다. 그리고 배달일이 있으면, 엘리베이터도 없는 빌라 4층까지 아버지하고 같이 가구를 들고 배달을 했다. 그러면 밤이 되고, 난 다시 서울 집으로 온다. 물론 수고했다고 용돈 주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그렇게 용돈을 받으면 더 이상 용돈을 안 주신다. 그래서 내가 남의 집 일을 한 것이다. 부모님 가게일을 아무리 도와줘도 내가 유럽배낭여행 갈 돈을 만들 수가 없다. 그런 나의 처지는 생각지도 않고, 부모님을 아는 사람들은 ‘아들이 효자야, 요새 그런 아들이 어딨어’라며 자식을 잘 키운 부모님을 부러워했고, 나를 칭찬도 많이 했다. 난 그런 소리가 정말 듣기 싫었다. 


 대학생이 되어도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짜증이 났다. 늘 눈치를 봐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늘 돈이 필요했다. 난 언제 독립해야 하나? 빨리 졸업하고 돈을 벌고 싶었다. 무엇을 해서 돈을 벌지는 몰랐지만,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월급을 탔다. 당시에는 적지 않은 연봉을 받았는데, 그 월급통장을 어머니가 관리하고, 내 지갑에는 신용카드 하나, 가끔 어머니가 주시는 용돈이 전부였다. Suna를 만나서 결혼하기 전까지 그렇게 살았다. 내가 직장 일은 재미있는데, 왜 의욕이 안 나는지 한 참이 지난 후에 알았다. 


 내가 회사에서 아무리 많은 돈을 벌면 뭐해? 내가 쓰지도 못하는데, 2004년 내가 그래도 성과급으로만 천 만원 넘게 받았는데, 난 그 돈을 구경도 못했다. 당연히 지금까지 나를 키워 주신 어머니 돈이라고 생각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신안에 염전 노예가 있었다면, 안산에는 김경진이 있었다. 나중에 Suna랑 결혼하고, 돈을 직접 관리하고, 내 돈을 내가 써보니, 돈 버는 재미를 좀 느꼈다. 그제서야 왜 돈 버는지 이해가 갔다. 아무리 부모, 자식관계라도 인간은 대체로 이기심에 의해서 행동이 되어지고, 이기심 없이 무언가를 잘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돈 쓰는 재미를 알아야, 돈 버는 재미도 알지. 쓰지 못하는 돈, 벌어서 무엇 하랴. 돈은 쓰기 위해서 버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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