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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Nov 19. 2019

부르마블 게임과 나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면서 부모님이 어떤 이유로 자주 싸우시는 것인지 알았다.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의 놀음이다. 당시에 어머니 말만 철썩 같이 믿었던 나는 아버지가 가산을 탕진할 정도로 크게 놀음을 하시는 줄 알았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너무 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닐 수도 있는 것을 늘 시끄럽게 지나갔다. 


 내가 초등학생때에는 아버지는 경동시장에서 장사를 하셨고, 간혹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은 주로 시장 사람들하고 밤새도록 화투를 친 날이다. 그런 날이 좀 잦아지면,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경동시장까지 갔다. 가게문을 닫고, 시장 사람들과 섞여 있는 아버지가 보이며, 나는 근심에 가득찬 얼굴로 아버지에게 집에 가자고 조른다. 물론 어머니가 그렇게 시켜서 한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는 마지못해 나를 따라나서고, 집에 가서 두 분이 또 엄청 싸우신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옛날 기억을 다시 끄집어 내니, 지금도 나는 그때의 기억이 나고 그때가 너무 싫다. 


 중학교때에는 우리집이 과일도 팔고 과자도 파는 슈퍼를 했다. 아버지가 도매시장에 가셔서 과일을 사 오셨다. 겨울만 되면 슈퍼 장사가 잘 안된다. 그래서 아버지는 과일 도매시장에서 또 시장 사람들과 화투를 치신다. 중학생이 되었으니, 내가 아버지를 찾으러 갔고, 아버지를 찾아서 집으로 오면 또 싸우신다. 그런 일이 내가 20살이 될 때까지 반복되었다. 


 중학교때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기 전에 가게에 들러서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갔다. 가게에 부모님이 안계시고, 동생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날은 내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왜냐하면, 두 분이 집에 가서 싸우시기 때문이다. 정말 진절머리 나게 싸우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중학생이 되었으니, 아주 어릴 적 보다는 그 당황이나 두려움의 정도가 덜 하지만, 부모님이 싸우시는 것은 여전히 기분이 안 좋았다. 


 두 분이 싸우시면, 어머니는 나 에게도 ‘지 애비 닮아서, 너도 크면 놀음 하겠지’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어머니에게 놀음은 재미삼아 치는 고스돕, 게임, 내기 등 땀 흘려 일해서 버는 돈이 아니면 다 놀음이었다. 그런 영향으로 난 누구랑 내기를 하지 않았다. 게임도 안 했다. 내가 내기를 하거나 게임을 하면 어머니는 ‘지 애비 피는 못 속인다'고 했다. 정말 그 이야기가 너무도 듣기 싫었고, 놀음꾼의 아들이라는 것이 어머니가 나에게 새겨준 주홍글씨였다. 


 중학교 2학년 설날 때였다. 중학생이 되니, 설날에 새뱃 돈을 좀 넉넉히 받았다.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는 게임이 부르마블 게임이었고, 초등학교 때부터 정말 갖고 싶은 장난감이 레고 블록의 성이었다. 부르마블 게임도 그냥 부르마블게임이 아닌, 게임판이 하드보드로 된 빳빳한 게임과, 호텔, 빌딩, 별장이 플라스틱 모형으로 된 보드게임이었다. 어머니에게는 세뱃돈 받을 것을 조금 받았다고 거짓말하고, 그 부르마블 게임을 샀고, 레고는 너무 비싸서 대신에 흑기사 성이라는 한국 블록을 샀다.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하면서 문방구에서 그걸 구입하고 집으로 왔다. 내방 구석에 잘 숨겨 놓고, 게임을 하고 싶을 때 마다 했고, 블록도 갖고 놀았다. 어느 날 집에 가니, 마루에 부르마블 게임하고 흑기사 성이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어디서 이것을 샀냐고 추궁하셨고, 사실대로 다 말했다. 그 날 어머니에게 얼마나 맞았는지 몰랐다. 부르마블 게임을 보면서 ‘너도 니 애비처럼, 벌써부터 놀음을 하는구나, 너 같은 거 키워 봤자 놀음꾼만 만드는 구나’ 등등하며 갖은 욕을 다 먹고, 결국에는 문방구에 가서 돈으로 바꿔오라고 했다. 구입한지 얼마나 오래됐는데, 어떻게 돈으로 바꾸겠는가? 결국에는 문방구에 가서 그냥 다 주고 왔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놀음에 얼마나 데였으면 나 에게도 저럴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부르마블이 무슨 놀음이냐고 속으로 항변도 했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 한게임 고스돕도 하고, 카지노 가서 게임도 하고, 그 보다 더, 카지노 가서 돈 따는 책도 썼는데, 난 놀음꾼이 안됐다. 그리고 직장을 다니면서 레고를 샀고, 간혹 주말에 갖고 놀았는데, 재미가 없었다. 누구나 가장 재미있을 때가 있는데, 난 그 때를 놓쳤다. 윤재도 나를 닮아서 레고를 좋아해서, 윤재가 좋아하는 레고는 다 사줬다. 윤재 레고는 정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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