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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Feb 26. 2020

윤재에게 미안한 일들

 좋으나 싫으나, 윤재는 태어났고, 윤재로 인해서 Suna와 나는 더욱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돌이켜 보면 윤재에게 잘 해주고 싶었는데, 나와 윤재는 그동안 서로 타이밍이 너무 잘 안 맞았다. 윤재가 갓 태어날 때는, 내가 윤재에게 너무 해주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윤재가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고, 윤재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을 어떻게 미래에 줄지 나 역시 초보 아빠라서 이를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만 3세도 안된 윤재와 미국에서 생활을 시작했고, Day care center에 데려가는 날, 나와 떨어지기 싫어서, 엉엉 우는 윤재를 뒤로하고 나올 때, 내 가슴도 슬펐다.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가, 미국 사람들 틈에 껴서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데, 잘 지낼 수 있을지 겁이 났으나, 미국에서 생존하려면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그렇게 나의 유학생활과 윤재의 미국 생활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흘러서, 윤재도 미국생활에 적응이 되었으나, 생각보다 나의 공부 기간이 길어졌다. 윤재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 내가 집에 있는 날이 많아지고, 윤재가 학교 갈 때도 내가 집에 있는 날이 많아졌다. 윤재는 변함없이 친구들과 뛰어놀고, 걱정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윤재가 엄마에게 ‘난 아빠처럼 공부 오래하지 않을 거야. 대학교도 안가고, 고등학교 졸업하면 바로 일 할거야. 자동차 수리공할거야’라는 이야기를 했다. 윤재의 말이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Suna는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너무 슬펐다. 윤재 친구의 아버지들은 모두 일터에서 일을 하는데, 윤재가 보기에 자기 아빠는 일터에도 안 나가고, 자기처럼 학교만 다니기 때문에 어린 윤재의 눈에도 내가 뭔가 부자연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윤재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윤재는 내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윤재가 어릴 때 윤재에게 무엇을 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막상 윤재가 내가 주는 것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되니, 내가 윤재에게 걱정만 주고 있다는 생각에 너무 슬펐다. 


 귀국을 하고, 직장을 다니기까지 2달 간의 공백이 있었다. 윤재는 귀국반이라는 별도의 학급이 있는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윤재가 한국 친구들을 보니, 낮에는 친구들 집에 엄마만 있는데, 우리는 아빠도 있어서, 윤재가 이상하게 생각했다. 윤재 친구들의 아버지들은 모두 회사에 가는데, 우리 아빠만 집에 있으니, 윤재가 보기에 어색하게 보였고, 뭔가 잘못되는구나라고 느낀 것 같았다.


 어느날 ‘아빠는 회사 안가?’ 이렇게 나에게 물었다. ‘곧 갈거야’라고 대답을 했지만, 내가 직업이 없는 것을 윤재가 너무 걱정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 순간, 마음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아빠가 직업이 없으면, 윤재를 누가 키우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윤재를 달래기 위해서 ‘아빠 할아버지가 돈이 엄청 많아, 시골에 산도 있고 땅도 있고, 정말 많아. 그거 전부 다 윤재한테 준대. 윤재 걱정 하나도 하지 않았도 돼. 아빠도 이제 금방 회사가서 돈을 많이 벌거야’라며 윤재를 안심시켰다. 혹시나 윤재가 계속 걱정 할까 봐, 이런 이야기를 윤재에게 반복해서 해 주었고, 직장이 결정되었을 대 그 소식을 윤재에게 바로 알려주었다. 


 한국온지 3년이 넘은 지금, 다행스럽게도, 윤재는 자기 자신의 일만 걱정하는 아이가 되었다. 윤재의 걱정은 친구들과 게임을 해야 하는데, 친구들이 모두 학원에 간 것, 더 놀고 싶은데, 학원 숙제를 해야 하는 것, 학원에서 시험을 보는데, 시험을 잘 못봐서 나머지 공부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 같은 반 여자친구가 윤재를 좀 좋아해서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은 지극히 윤재 자신의 일에 대한 걱정만 하는 사람이 되어서 지금은 내 마음이 편안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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