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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점이 찍힌 자리

by 디에디트랩

대학에서의 수업 시간. 한국과 미국의 편집 워크플로에 대한 비교 소개를 하는 날이다. 편집팀 인원 구성에 관해서 이야기하다 언제나처럼 잠시 멈춘다.


조용하다. 강의실이 이상하게 조용하다. 마흔 명가량의 학생들이 앉아 있지만 마치 빈 교실처럼 고요하고, 그 고요함 속에서 내 목소리만 덩그러니 떠다니고 있는 것 같다.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몇몇 학생들의 눈동자. 저기 맨 뒤 학생은 자기 노트북 화면만 응시하고 있다. 완전히. 마치 그 안에 무슨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이. 옆자리 학생은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고.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지, 수업 내용이 흥미는 있는지 강의 때면 늘 걱정이 한 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수업도 마찬가지다.


"잠깐만 여기서 호칭에 관해서 이야기해 볼게요."


순간 강의실의 공기가 바뀐다. 마흔 개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꽂힌다. '쟤가 무슨 말 하려고 저러나' 하는 표정들. 마치 갑자기 수학 시간에 시를 읽기 시작한 선생님을 보는 듯한, 그런 당황스러운 눈빛들이다. 뭔가 해야겠다. 이 어색한 공기를 뚫고 가려면 뭐라도 해서 관심을 끌어야 한다.


"여러분 우리 이 유명한 시 다 알죠?"


내 목소리가 한 톤 높아진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이름의 중요성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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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영화 편집 | <할리우드로 출근합니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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