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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Jun 07. 2023

도시여, 영원하려거든 벽을 허물어라.

알고리즘영단어:city, citizen, citadel, bud

부르조아bourgeois 라는 말은 계급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어감을 갖고 있다. 부유하고 잘 사는 사람들을 부르조아라고 비꼬듯이 부르는 것은 어느정도 사회적으로 용인된 비아냥거림이다. 부르조아라는 단어는 사회적, 정치적 격변을 거치면서 매우 정치적이며, 자주 위화감을 조성하는 말이 되었다.


원래 부르조아라는 말의 어원은 "마을에 사는 사람town dweller" 이라는 뜻이다. 과거 마을은 보통 성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니, 성안에 사는 사람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성안에 살 수 있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지위나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부르조아라는 단어에는 도시, 마을 을 의미하는 요소가 있다. 마을, 동네를 의미하는borc-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단어의 형태는 burg 로 나타나기도 한다. burg는 높다는 뜻도 있어서, 언덕이나 높은 곳의 요새를 의미하기도 했다.


Berg-는 인도유럽어에서 독일어로 유래된 말인데, 프랑스나 독일에는 berg가 들어가는 지명이 많다. 스펠링은 약간 차이가 나지만, 하이델베르그Heidelberg, 합스부르그Habsburg, 스트라스부르그Strassbourg 등 많은 지명은 여전히 옛날 언덕과 성채였던 시절의 흔적을 이름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개인들은 외부의 폭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외부의 물리적 폭력으로 부터 피하기 위해서는 지형적으로 안전한 곳에 모여사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고, 언덕이나 성채같은 구조물은 그런 기능에 유리했을 것이다.

영어로 성, 성채, 혹은 요새를 의미하는 단어는 castle, 혹은 citadel이라고 한다. 성citadel 안쪽은 적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했을 것이다. 성채를 의미하는 단어 citadel에서 도시라는 뜻의 city가 유래하였다. citizen은 도시city에 사는 사람이라고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성안에서 살던 사람들에겐 일종의 규칙같은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공동체에서 살아가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윤리와 규칙이 있다. 그런 제반 규정에 대한 학문은 civics라고 하고 이 단어를 처음 공부할 때는 공민학이라고 배운 기억이 있다.


20세기 초 미국의 영화감독 오손 웰즈(Orson Wells)는 배우이면서 프로듀서이면서 각본가로도 활동했다. 1941년 그가 감독하고, 제작 및 주연을 했던 <시민케인Citizen Kane>은 영화제작의 교과서와 같은 작품으로, 지금도 관객들에겐 감동을, 영화감독들에겐 영감을 주는 작품으로 남았다.

제목에 쓰인citizen은 시민을 의미하는 단어다. 하지만 영화를 본다면 “시민”이라는 말이 다소 뜬금없이 들린다. 왜 제목에 “시민”이 쓰였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영화의 내용에 맞추어 추리해 본다면, 제목에 사용된 시민은 공민적인 의미의 시민이 아니라, 말 그대로, ‘성안에 사는 사람’이라는 원래 어원의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영화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 사무엘 테일러 코울리지의 유명한 시 <쿠블라 칸Kubla Khan>의 나레이션과 함께 시작한다. <쿠블라 칸>은 코울리지가 아편에 취한 채 잠들었다가 꿈속에서 본, 몽고의 쿠빌라이 칸Kublai Khan의 거대한 성을 모티브로 쓰여졌다. 코울리지는 꿈에서 본 거대한 건축물을 제나두Xanadu라는 이름으로 변형하여 시에 등장시킨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케인은 실제 인물이었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두에 등장하는 제나두와 같은 거대한 성은, 실제 존재하고 있는 허스트 캐슬을 모델로 했다고도 한다. 허스트는 조셉 퓰리처와 함께 미국의 거대한 양대 신문재벌이었으며, 영화속 케인은 허스트의 여러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영화는 주인공 케인이 임종할 때 남긴 한마디 “로즈버드”의 의미를 추적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장미꽃봉오리의 의미라고 할 수 있는 “로즈버드”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영화는 케인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취재하며 살아생전의 케인의 삶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터뷰를 할 때 마다, 사람들은 전혀 상반되는 케인의 모습을 증언하는데, 어떤 인물인지 결론 내리기가 어렵다.


케인에 관한한 어떤 것도 결국 진실이 되기에는 어려웠지만, 그가 남긴 한마디, “로즈버드”의 의미는 밝혀진다. 그것은 케인이 어릴 적 즐겨 타던 썰매의 이름이었다.


버드Bud는 꽃 봉오리를 의미한다. 그만큼 순수하고 연약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막강한 권력과 돈을 얻었지만, 결국 케인이 생의 마지막 순간 찾았던 것은 유년시절의 행복과 그리움이었다. 케인은 어린시절의 행복과 기억이 있었던 자리를 돈과 권력과 쾌락으로 채우려고 했지만, 그 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막대한 돈을 벌고 나서, 자신이 어린시절 살았던 동네에 크고 넓은 길을 깔고, 살던 집도 크고 번듯하게 다시 지었다고 한다. 자동차의 왕답게, 자신의 고향동네에도 차들이 다닐 수 있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노년이 되어서는 그 넓은 길과 큰 집을 허물고, 다시 어린시절 보았던 그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일화가 있다.

<시민케인>은 고전적 영화기법이라고 할 수 있는 미장센Mise-en-scène으로도 아주 유명하다. 미장센이라는 말은 장면을 구성하는 기법이다. 지금 다시 영화를 봐도, <시민케인>의 미장센은 매우 인상적이다. 컴퓨터 그래픽과 온갖 다양한 연출이 가능해진 지금의 영화들의 미장센은 <시민케인>의 경우만큼 인상적이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도 다양하고 다채로운 기법이 가능해진 탓에 순수한 아날로그적인 미장센이 약화된 탓일수도 있을 것이다.


미장센과 비슷한 용어에는 미장아빔mise-en-abyme이 있다. 이것은 무한한 심연속에 화면을 배치하는 것과 비슷하다. 엘리베이터 중에는 양쪽 면에 거울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우리는 미장아빔속에 갇힌다. 두 개의 거울이 양쪽을 무한반복하면서 비추기 때문이다. 일상속의 아주 잠깐뿐인 순간이지만, 우리는 그 찰나의 영원속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찰나속의 영원은 마치 오래된 동양철학의 아포리즘aphorism처럼 들린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순수의 전조Auguries of Innocence>는 이렇게 시작한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려면,

네 손바닥 안에 무한을 움켜쥐고

순간속에서 영원을 잡아라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Eternity in an h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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