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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Jun 05. 2023

신데렐라, 불을 꺼뜨리지 마! 네게도 꽃피는 시절이온다

알고리즘영단어:cinderella, incinerator, rose

신데렐라Cinderella라는 단어는 사실 부엌데기 정도의 어원적 의미를 갖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기있는 동화나, 전설 민담에는 비슷하고 보편적인 모티브가 있다. 나쁜 새엄마, 출생의 비밀, 헤어진 아버지와의 재회, 난관에 부딪히고, 조력자를 만나게 되는 등, 세계의 동화를 살펴보면 흥미롭게도 비슷한 이야기의 구조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그러한 모티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재투성이 소녀', 신데렐라cinderella이다.   

재투성이인 이유는, 소녀가 항상 부엌의 아궁이에서 불을 지펴야 했기 때문인데, 아마도 집안에서 거의 하녀처럼 궂은일을 도맡아서 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의 원형은 프랑스의 유명한 동화 작가 샤를 페로가 지은 <재투성이와 작은 유리 신발>, 그리고  독일의 그림(Grimm)형제가 지은 <재투성이> 라고 한다. 이 두 편 모두 한국의 <콩쥐팥쥐>와 비슷한 의붓자식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재투성이라는 이름은 프랑스 원전에는 Cendrillon 으로 등장하는데 이것은 영어에서 재ashes를 의미하는 cender와 관계가 있다.  cender는 cinder-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형태가 변화하면서 불과 관련이 있는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게 된다. 


독일어권에서는 재투성이라는 의미가 보다 분명하게 나타난다.  독일어로Aschenbrödel  이라고 하는데, asche 는 영어의 "ash" 를 의미하고,  brodeln는 영어의 "bubble up, to brew." 에 해당하는데, 아마도 재를 이용한 발효등의 일을 맡아서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궂은 일을 하다보니, 항상 재투성이 일 수 밖에 없고, 늘 부엌에서 일하니 부엌데기가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신데렐라Cinderella는 불이나 재를 의미하는 cinder와 여성을 나타내는 접미사 ella 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단어다. 소각하다, 불로 태워 재를 만들다는 의미의 incinerate 에도 역시 cin-의 요소가 보인다. 방화범은 incinerator라고 한다. 


어린이를 위한 대표적인 동화이기도 하지만, 신데렐라 이야기의 원형은 꽤나 잔인하다. 신데렐라의 의붓언니들은 구두에 발이 꼭 맞는 주인을 찾고 있는 왕자에게, 자신의 발이 구두에 꼭 맞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뒷꿈치를 칼로 잘라낸다. 고통을 참으면서 왕자에게 자신의 발이 구두에 꼭 맞는다고 말하지만, 넘처나는 피를 감추지는 못했다. 결국, 구두에 발이 꼭 맞는 주인이 신데렐라임이 밝혀지고, 왕자는 신데렐라와 결혼하게 된다. 


신데렐라가 의붓어머니와 의붓언니들로부터 구박을 당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왕자는, 결혼식 당일 의붓 언니들에게 벌을 내린다. 결혼식 행렬에 양 옆으로 따라 걷게 하는데, 올 때, 갈 때, 비둘기들이 눈알을 파먹게 하는 벌을 내린 것이다. 언니들은 남은 인생을 장님으로 살게 된다. 

아동을 위한 이야기가 따로 만들어진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 경우, 중세에는 아동에 대한 인식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중세의 서양화에 그려진 아이들은 신체만 작게 그려졌을 뿐, 거의 어른과 크게 다르지 않게 나타난다. 아동에 대한 근대적 인식이 있기 전까지, 아이들은 기본적인 신체활동이 가능해질 정도만 자라면, 작은 성인과 같이 인식되었다. 지금은 12세 이하가 볼 수 있는 것, 19세 이하가 할 수 없는 것 등이 나눠져 있지만, 과거엔 그러한 구분이 전무했던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근대 초 이후로도 한참동안 아이들은 7살 정도만 되어도 어른들 세계에 뒤섞였다고 한다.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소설에서도 아동들은 사회적으로 어른들과 크게 구분되지 않았다. 죄에 대한 벌을 받을 때도 어른과 큰 차별이 없었고, 공공장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될때도 아이들은 그 장면을 보는 것에 큰 제한이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결국, 아동이라는 개념은 원래 있었다기 보다는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발명된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따라서,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들은 새롭게 정의된 아동의 개념에 맞게 각색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하다못해,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에도 살인과 폭력의 요소가 꽤나 극적으로 나타난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원래 이야기를 각색하고 순화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각색하고 순화해서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도, 읽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의미없다.


최근의 PC주의 열풍이 거세다. PC주의란 Political Correctness의 약자로, 사회정치문화적인 편견이 담겨 있는 기록이나 서사를 보다 중립적인 것으로 바꾸자는 운동이다. 남성중심으로 만들어진 단어 체어맨chairman을 체어퍼슨chairperson 으로 바꾸거나, 여성중심으로 만들어진 단어 스튜어디스stewardess를 성중립적인 항공기 승무원flight attendant으로 바꾸는 것 등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몇몇 단어를 바꾸는 것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기존의 문학이나 영화에 대해서까지 PC주의의 영향이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로알드 달의 최근 개정판에는 원작에 사용된, 아이들에게 해로울 수 있는 단어들(?)이 지극히 중립적인 단어로 순화하는 것과 관련한 해프닝도 있었다.  


로알드 달의 대표작, <챨리와 초콜릿 공장>에 등장하는 fat이라는 단어는 enormous로 바뀌고, men은 people등의 단어로 바뀌었다. <마틸다>에서는, 마틸다가 <정글북>의 작가인 키플링의 소설을 읽는 모습이 등장하는데, 키플링을 제인오스틴으로 바꾸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식이라면, 과거 50년대, 60년대, 70년대 각각의 시대적 문화적 한계로 인한 편견을 표현한 문학과 영화들은 모두 다시 수정을 해야하지 않을까. 


그렇긴 해도 원작 <신데렐라>가 갖고 있는 엽기적인 폭력을 굳이 아이들에게 읽히게 하고 싶지는 않다. 얼마전의 영화 <크루엘라Cruella>라는 제목에도 여성형 접미사 –ella가 사용되었다. 잔인하다는 cruel 뒤에 여성형 접미사 ella가 결합된 형태이니, 이름만으로도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하게 한다. 재미있는 것은 크루엘라가 되기 전의 이름은 에스텔라Estella였다는 것이다. stella-는 별을 의미하는 여성형 이름으로 사용된다. 에스텔라Estella는 굳이 한국식으로 옮겨보자면, 별처럼 예쁜이 정도가 될 것 같다. 


한국에서도 널리 인기가 있어던 19세기 영국소설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의 이름 역시 에스텔라Estella 였다. 에스텔라는 남자에 대한 증오로 가득찬 미스 헤비샴에게 입양되어, 평생 남자들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감정없이 키워진다. 다행히, 핍을 만나 사랑하게 되지만, 어릴 때부터 남자를 냉대하도록 길러진 탓에 쉽게 사랑을 허락하지 못한다. 에스텔라는 이렇게 말한다.

 


“난 마음이 없어” I have no hearts.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키워지는 것인가. 

배트 미들러의 노래 <The Rose>에는 이런 가사가 등장한다. 


It’s the one who won’t be taken

Who cannot seem to give


한국어로 옮기는게 늘 애매하긴 하지만, 결국 사랑받지 못하면, 사랑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읽는게 가장 무난한 것 같다. 


그리고 노래의 가사는 마치 한편의 시처럼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아간다.


Just remember in the winter

Far beneath the bitter snows

Lies the seed that with the sun’s love

In the spring becomes the rose.


이것을 잊지마. 추운 겨울,

두껍게 쌓인 차가운 눈바닥 아래

묻혀있는 씨앗 하나가 

봄의 햇살을 받으면 장미로 피어난다는 것을. 


우연히 배트 미들러의 노래까지 왔는데, 공교롭게도 신데렐라의 일생과 비슷하게 일치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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