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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의 클라이맥스는 클리닉에서 고칠수 있나요?

알고리즘영단어:climate, client, clemency

by 현현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은 매우 글로벌한 이슈중 하나다. 기후를 의미하는 영어단어는 climate이다. 매일 매일의 날씨는 weather라고 한다. 한국어의 어감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기후와 날씨는 적용되는 영역이나 규모에서 쓰임이 다르다. 기후는 거시적이고 날씨는 미시적이라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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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는 계절의 변화를 수반한다. 그리고 계절의 변화는 지축의 기울기 axial tile, obliquity 때문에 생겨난다. 만약 지축axis이 기울어지지 않았다면 항상 태양빛을 받는 지구의 면은 동일했을 것이다. 당연히 계절의 변화도 생기지 못했을 것이다. 지축의 기울어짐으로 인해 4계절이 생겨나고, 기후climate가 만들어진다. 계절season과 기후climate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기울기는 clima라고 하는 단어속에 있다. 이 단어는 기후climate를 의미하는 단어의 근간이 되었다.


공전면을 기준으로 지구가 23.5도 기울어져서 자전하기 때문에 태양열을 받는 면적이 그때그때 달라진다. 이런 결과로 지속적으로 균일하게 태양빛을 받는 적도근방은 늘 뜨거운 반면, 적도를 중심으로 위와 아래쪽은 항상 반대되는 계절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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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은 기후문제, 환경오염, 지구온난화에 대한 가장 유명한 다큐멘타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거의 될 뻔했던 엘 고어는 대선에서 패배한 후, 자신이 학생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던 환경을 주제로 새로운 이력을 쌓는다. 그가 2006년 집필에 참여하기도 했던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는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에 대한 매우 충격적인 사실을 보여준다.


<불편한 진실>이 공개되고 난 후로, 영화의 제목인 “불편한 진실” 은 정치시사 이슈에 있어서 매우 보편적인 레토릭이 되었다. 정치적인 이슈 어디에나 불편한 진실은 있게 마련인데, 영화의 제목은 마치 현상으로 존재하던 것에 딱 적절한 이름을 붙여준 것 같이 되었다. 한동안 여기저기서 불편한 진실이 마구 터져나왔다.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으로 인해 빙하가 녹고, 먹이를 찾기 어려워진 북극곰이 유빙 없는 차가운 바다를 끝도 없이 헤엄치다 물에 빠져죽는 장면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북극곰이 죽는 가장 큰 이유는 익사가 아니라 인간에 의한 밀렵과 사냥이었다. 환경운동이나 기후변화에 관한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탄소배출이 많다는 비행기를 타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환경운동가나 혹은 매우 엄격한hardcore 환경주의자들이 아직도 세탁기와 세제를 사용한다는 것 역시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이라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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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다는 뜻의 clima는 종종 cline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뒤로 기울어지는 의자를 recliner라고 부를 때, 그것은 말 그대로 뒤로re- 기울어지는것cliner을 의미한다. 안쪽으로in- 기울어진다면 cline 그것은 일종의 경향inclination을 갖게 된다.


직선으로 똑바른것은 경직되기rigid 쉽다. 경직된 것은 기울어지지 않는다. 사람의 성격이 직선적이라면 다정하기 보다 엄격한 사람일 것이다. 친절하고 다정한 성격clemency은 딱딱하지 않게 은근히 기울어지는 성격이다. 사람을 살피고 배려하는 의미는 그 쪽으로 기울어지는 의미와 느슨하게 통한다. 힘든 상황에서 누구든 다정한 사람에게 기울수 밖에 없다. 다정하고, 친절한 의미를 갖고 있는 clemency 라는 단어에는 역시 기울다, 기댄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cl- 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어단어에 기울다, 기대다는 뜻의 lean의 핵심부분 역시, cl-에서 유래한다. 스펠링으로 본다면, clima와 lean 은 전혀 별개인 것처럼 보이지만, 핵심적인 부분이 공유되고 있다.


클라이언트client는 보통 고객이나, 의뢰인의 의미로 쓴다. 로마시대에 페트론patron의 보호를 받던 사람을 의미하는것에서 유래한다. 나를 보호하고protect 지켜주는 사람에게 의지하고 기대는lean 것은 당연하다. 클라이언트를 보호하는 사람을 페트론이라고 불렀다 페트론은 아버지를 의미하는 pater와도 관계가 있다. 아마도 가장 최초로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을 아버지라고 생각한데서 유래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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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과 하강, 증가와 하락을 의미하는 단어는 다양하다. decline은 하락, 감소를 의미한다. 아래로de- 기울어지는cline 의미로 거절한다decline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갈등이 고조되면서 이야기는 가장 흥미로운 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극적 전개의 절정을 흔히 클라이맥스 climax라고 한다. 이쯤되면 왜 클라이맥스인지 추측이 어렵지 않다. 기울어짐이cli- 최고max에 이른 것이라고 볼수 있다. 최대로 기울어지면 결국 모든것은 추락할 수 밖에 없다.


정신분석학을 임상에도 적용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환자들을 카우치couch나 소파와 같은 곳에 편안하게 눕게 했다. 육체적으로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긴장을 풀어야 환자의 무의식적 억압을 뚫고 감춰진 기억이 드러나기 쉽다. 정신과 클리닉에서 편안한 자세 혹은 누운것같은 자세로 상담을 하는 것은 매우 보편적인것처럼 보인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종종 정신상담을 받는 환자들이 소파에 편안히 누운 모습으로 묘사될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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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닉clinic은 병원, 혹은 치료시설, 혹은 개인치료시설 등을 의미한다. 클리닉이라는 말에도 역시 기울어져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사람이 기울어진 모습은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클리닉이라는 말의 어원에는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클리닉에서도 역시 환자는 소파에 편안히 누워서 자유연상을 해야 했을 것이다.


환경오염과 기후위기의 서사는 생각보다 훨씬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기후위기에 대한 최초의 서사 아닐까? 영화 <아일랜드>는 환경오염의 서사가 권력에 의해서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일종의 종말론적 환경주의에 대한 느슨한 비판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는 환경오염으로 인해 야외에서의 활동이 불가능해진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똑같은 옷을 입고, 거의 비슷한 일상을 반복하는 건강한 인간들이 거대한 청정시설에서 살아간다. 시설은 무장한 군인들이 통제한다.


그들에게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지구에 남은 마지막 청정지역 "아일랜드"로 가는 복권에 당첨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아일랜드를 꿈꾸며 시설속에서의 반복되는 무의미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견딘다. 하지만, 지구가 오염되었다는 것은 시설에 있는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장치였다. 사실 지구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며, 다만 시설속의 인간들을 마치 물건의 재고를 보관하는 것처럼 질서정연하게 유지하기 위한 조작이었던 것이다. 시설속의 인간들은 모두 복제인간들이었다. 언젠가 자신의 원본인간에게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면 장기를 공급하기 위해 미리 만들어진 존재들인 것이다.


복제가 되면서 원본인간의 성격도 옮겨졌는지, 한 개체가 시설속의 질서와 정체성의 의문을 품고, 시설을 탈출하게 되면서 영화는 특유의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의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장기공급을 위한 복제인간이라는 매우 민감하고 윤리적인 주제 때문에, 기만적인 환경오염과 종말론적 환경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은 다소 주목받지 못했다.


영화에서 복제인간들은 아주 부지런히 나름대로의 일상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 일상의 중심에는 가짜 일fake work이 있다. 그 일의 핵심은 그저 복제인간들이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실제 하고 있는 일은 뭐가 됐든 중요하지 않다. 단지 인간들이 뭔가에 몰두하면 보상을 주고 의미를 느끼게 해주면 되는 것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현대인간들이 매일 하고 있는 그 일들과도 비슷하게 보인다.


죠지 칼린은 환경오염에 대한 과도한 우려를 자신의 쇼에서 냉철하게 비판한다. 지구가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자연의 재앙들을 인간이 버리는 플라스틱 빨대나 스티로폼과 비교하며 인간은 "감히" 지구를 망칠 능력이 없을것이라고 주장한다. 얼핏 들으면 또 그럴듯하게 흥미롭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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