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영단어:requiem, quiet, coy
누군가의 부고를 접하면 영어권에서는 흔히 R.I.P.라고 쓴다. Rest In Peace 라는 의미로 평화와 안도 속에서 영면하라는 뜻이다. 쉬다라는 뜻의 Rest는 그런 의미에서 죽음을 환기시키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쉰다는 것은 실제로 ‘죽음’의 의미로 속어나 농담에서 사용된다. 죽음과 쉼의 유사성에 근거한 약간 살벌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죽은이를 기리는 음악을 레퀴엠이라고 한다. 원래는 애도와 장례를 위해 작곡되었겠지만, 장례와 상관없는 곳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다. 레퀴엠이라는 단어는 번역하면 진혼곡에 해당되지만, 왠지 한국어의 번역어는 레퀴엠이라고 부를때와 어감이 약간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도 레퀴엠은 그냥 레퀴엠으로 사용될 때가 많다. 모차르트, 베르디, 포레와 같은 많은 거장 음악가들의 레퀴엠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장례와 무관하게 자주 듣는 음악으로 유명하다.
안식한다는 의미에 쉬다라는 의미가 있는 것처럼, 레퀴엠에도 역시 rest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Requiem은 rest+ quiet 의 의미조합이다. Quiet는 조용하다는 뜻이다. 레퀴엠은 조용함 속에서 쉬다 안식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레스트Rest는 한국말처럼 사용되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단어중 하나다. 길이가 짧아서 한 단어 처럼 보이지만, re와 st로 구분된다. re는 반복이나 뒤를 의미하는 접두사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말이다. 르네상스Renaissance는 과거의 문화를 다시re 되살리naissance는 것을 의미한다. 리셋Reset은 어떤 조건과 상황을 다시re 처음으로 설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Recover는 잃어버린 것을 다시re 회복한다는 뜻이다. 다시 얻는다는 뜻으로는 Regain도 있다. <실낙원Paradise Lost>을 썼던 밀턴은 <복락원Paradise Regained>라는 장편의 시를 쓰기도 했다.
st-는 직립하는 것과 관계있다. 혹은 바위나 돌처럼 굳건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직립해 서 있는 것은 강인해야 가능하다. 스탠리Stanley라는 이름은 그래서 강한, 강건한 의미를 갖는다. 직립해서 선다는 의미는 스탠드stand에서 볼 수 있다. 일어서다, 서 있다는 뜻의 st-는 많은 단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옆에 서서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은 assistant, 말뚝은 땅에 박혀 서 있어서 post가 된다. prostate는 앞을 의미하는 pro와 서있다는 state가 결합한 말이다. 앞에(전前) 서(립立) 있으니, 전립선이 된다.
먼 거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distant라고 한다. 떨어져서dis 서 있는stant 것이다. 떨어져 있는 것만큼이 거리가 된다. 그래서 멀리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코로나 시기에 사람들은 항상 거리두기distancing을 해야 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social distancing이라고 한다. 힘든일을 견디며 끝까지 버티는 것은 persist라고 한다. 끝까지 통과per할때까지 서서 견뎌내는 것이다.
acquiesce는 콰이어트quiet와 qui-로 연결된 단어다. 원래 잠자코 있다는 뜻에서, 의견을 따르다, 순순히 따르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ac+quiet 의 의미조합이다. A(c)가 어떤 방향을 향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면, quiet는 조용하다는 뜻이니, 조용해지는 방향으로 간다는 뜻이다. 군말없이 따른다는 뜻이 되겠다.
활동을 멈추면 조용해진다. 때려치우다, 그만두다, 포기하다는 의미의 quit 역시 quiet와 관계가 있는 말이다. 일을 그만두면quit 편히 쉴 수 있다.
핵심이 되는 qui-의 소리는 여러 단어에 나타난다. coy는 그중 비교적 간단한 단어라고 할 수 있는데, 수줍은, 말이 없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quiet의 조용하다는 의미와 연관될 수 있는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없음은 수줍음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Coy라는 단어는 종종 shy와 비슷하게 사용된다. 뉴진스의 노래인 <Super Shy>에 등장하는 것처럼 shy라는 단어도 역시 수줍은, 말이 없다는 뜻의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수줍음은 남녀간에 생길 수 있는 감정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이성에 대해서 수줍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열렬히 구애를 하는 사람에게 수줍음은 남녀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다. 수줍음을 느끼는 당사자만이 벽을 허물 수 있다. 어떻게 하든 수줍음을 극복하고 관계의 장으로 나와야 남녀관계에는 진전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16세기 영국의 시인 앤드류 마블은 이런 문제에 매우 열정적으로 고민했던 시인이었다. 마블은 자신이 흠모하는 여성의 수줍음을 무마하기 위해 시를 한편 썼는데, 얼마나 잘 썼는지, 그 시는 지금까지도 영문학 시간에 늘 읽혀지고 있으며, 누군가의 연서에는 아직도 자주 인용되고 있을 것이다. 시를 써서 여인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했는지는 잘 확인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읽어도 충분히 감동이 있다는 것이다.
시는 간단하다. 인생은 짧고, 육신의 아름다움은 곧 사라질 것이니, 아직 에너지가 있고, 육체가 아름다울 때 함께 즐겨보자는 내용이다. 뻔한 수작의 멘트이건만, 이렇게 까지 공들여서 문장과 비유를 골라 표현한 것이 놀랍다. 지금의 관점으로 본다면 키치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진지함과 해학이 잘 어우러져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찬사는 후세의 많은 카사노바들에게 두고두고 롤 모델이 되었을 것이다.
Andrew Marvell
To His Coy Mistress coy
Had we but world enough and time,
This coyness, lady, were no crime.
We would sit down, and think which way
To walk, and pass our long love’s day.
만약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와 시간이 정말로 충분하다면,
당신의 수줍음은 아무런 죄가 아닐 거에요.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함께 나란히 앉아서 어떤 길을 갈까 고민해보며
우리만의 길고 긴 사랑의 나날들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 . .
An hundred years should go to praise
Thine eyes, and on thy forehead gaze;
Two hundred to adore each breast,
But thirty thousand to the rest;
An age at least to every part,
And the last age should show your heart.
For, lady, you deserve this state,
Nor would I love at lower rate.
당신의 눈을 찬미하는데 백년은 걸릴거에요
당신의 이마를 바라보는데, 또 백년은 걸리겠죠.
그대의 두 가슴을 숭배하는데는 이백년은 걸릴거에요
그리고 당신의 나머지 부분을 찬사하는데는 삼만년정도 걸릴겁니다.
그래서, 인류의 마지막 시대가 되어서여 당신의 마음을 볼 수 있겠죠.
당신은 이정도의 찬사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고,
또 저 또한 이정도도 못할 정도로 당신을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But at my back I always hear
Time’s wingèd chariot hurrying near;
And yonder all before us lie
Deserts of vast eternity.
Thy beauty shall no more be found;
하지만, 저는 항상 제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시간의 날개 달린 전차가 달려오는 소리 말이죠.
바로 우리 앞에는 광대한 영원의 사막이 펼쳐져 있습니다.
거기서 당신의 아름다움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거에요.
Nor, in thy marble vault, shall sound
My echoing song; then worms shall try
That long-preserved virginity,
당신의 대리석으로 된 무덤속에서는
제 노래의 메아리도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땐 이미 벌레들이 당신이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한 순결을 갉아먹었겠죠
And your quaint honour turn to dust,
And into ashes all my lust;
The grave’s a fine and private place,
But none, I think, do there embrace.
그리고 당신의 우아한 영광은 먼지로 변할 것이고
저의 모든 불타는 욕망도 재로 변할 겁니다.
무덤은 은밀하고 훌륭한 장소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선 아무도 서로 포옹할 수 없겠죠.
Now therefore, while the youthful hue
Sits on thy skin like morning dew,
And while thy willing soul transpires
At every pore with instant fires,
Now let us sport us while we may,
그러니까, 당신의 피부에 젊음의 생기가
아침이슬처럼 여전히 머물러 있을 때,
그리고 당신의 정열적인 영혼이
온몸의 피부를 통해 불길을 뿜어내는 동안
우리 함께 즐겨요. 아직 우리가 그럴 수 있을 때 말이죠.
. . .
Thus, though we cannot make our sun
Stand still, yet we will make him run.
그럼, 우리는 태양을 멈추게 할 수는 없겠지만,
태양을 속히 달려가게 할 수는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