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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Sep 29. 2023

우라노스에 생명의 비가 내린다

알고리즘영단어:Uranus, uranium, rain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아버지는 아마도 우라노스Uranus일것이다. 최초의 카오스chaos로부터 태어난 우라노스Uranus, Ouranos는 대지의 신이라고 할 수 있는 가이아와의 사이에서 타이탄 12신을 낳는다. 하지만 우라노스는 거대한 자식들이 마음에 들지 았았다. 우라노스는 자식들을 모두 타르타로스라고 하는 아주 깊은 곳에 가둬놓는다. 이렇게 되자, 자식들이 갇혀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가이아는 아들 크로노스Cronus에게 거대한 낫 스퀴테Scythe을 주며 아버지를 물리치게 한다. 


크로노스는 가이아로 부터 받은 낫으로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잘라낸다. 크로노스가 사용한 낫을 영어로는 싸이드Scythe 라고 한다. 서양에서 사용하는 이 커다란 낫은 조금 이질적이다. 아시아에서 사용하는 작은 크기의 낫은 sickle이라고 한다. scythe는 스키타이scythia족 명칭의 어원과도 관계가 있다. 보통 스키타이는 유라시아 유목민을 의미하는데, 스키타이족은 최초로 철기 문화를 가진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낫에 대해서 좀 더 말해보자. scythe에 포함된 sek라는 소리는 현재 많은 영어단어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일단 자르거나 해부할 때 쓰는 sect-라는 단어가 있다. 나눠진 부문, 영역, 구획을 말할 때 sector라고 하는 것은 분리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비슷하게 section이라는 말도 부문, 영역이라는 말로 쓸 수 있다. 양분한다는 의미의 bisect는 말 그대로 둘bi- 로 자르는sect 것이다. 해부한다는 뜻의 dissect는 분리를 의미하는 dis-와 자른다는 sect가 결합된 말이다. 곤충을 의미하는 insect에서도 볼 수 있는데, 곤충은 대부분, 그 구조가 마치 잘린 것처럼 나눠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근본적인 구분은 아마도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 것 아닐까? 그래서인지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성별sex에도 역시 자르고 분리한다는 의미의 sec이 포함되어 있다. 


크로노스로부터 거대한 낫으로 공격받은 우라노스의 피와 살은 지상에 떨어지면서 또 다른 신들을 탄생하게 했는데, 그중 바다에 떨어진 생식기는 돌연 엄청난 거품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거품 한가운데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태어난다. 흔히 아름다움은 공허하고 또 덧없는 것이라고 하는데, 미의 여신이 거품에서 태어난 것은 매우 명징한 의미를 보여준다. 


우라노스를 쓰러뜨린 크로노스Cronus는 이후 시간의 신 크로노스Chronos와 혼동되면서 점차 동일시된다. 크로노스Chronos는 시간의 신이면서 동시에 농사의 신이다.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의 흐름이다. 오늘 심어서 내일 거두는 농사는 없다.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순환은 농사의 핵심이다. 어쩌면 크로노스가 우라노스를 거세할 때 사용한 무시무시한 낫이 농부들이 추수할 때 사용하는 농기구 낫과 비슷했기 때문에 더더욱 농사와 관련성이 깊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크로노스가 들고 있는 낫의 폭력적인 상징성은 곧장 죽음과 결부되면서 그는 죽음의 신으로 진화한다. 


죽음의 신 답게, 크로노스 역시 자신의 자식들을 모조리 먹어치운다. 자신이 우라노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자식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자신이 부정하려고 했던 아버지의 전철을 고스란히 자신이 밟아간 것이다. 자신이 부정했던 아버지의 명령을, 아버지를 몰아내고 나서야 따르는 이런 특성을 프로이트는 "지연된 복종"이라고 부른적 있다. 흔히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표현도 크게는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크로노스가 자식을 잡아먹는 것에는 의미심장한 상징성이 있다. 크로노스는 시간의 신이였고, 시간은 자신이 시초를 준 모든 것에게 죽음을 가져다준다. 크로노스는 연대기를 의미하는 크로니클Chronicle이나 시계를 의미하는 단어 chronometer, 그리고 만성적이라는 뜻의 chronic 등에 여전히 남아있다. 시간 속에서 태어난 모든것은 결국 시간 속에서 사멸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는 것이다. 시간과 함께 인간은 끊임없이 생장소멸을 반복한다. 크로노스가 죽음의 신으로 등장할 때 들고 나타나는 거대한 낫은 인간을 추수한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농부가 곡식을 수확하듯, 죽음의 신은 인간을 수확하는 셈이다. 농사는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한다. 고대에 지식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크로노스는 그래서, 지혜로운 노인의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죽음의 신이면서 동시에 농사의 신이기도 했다. 


우라노스는 어원적으로 비를 의미한다. 비나, 습기, 안개, 액체, 물, 여하간에 물과 관련된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우라노스는 종종 레인 메이커rain maker 혹은 비의 제왕lord of rain이라는 의미로도 통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거의 최초로 인격화되고, 실체화된 존재의 이름이 비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놀라운 것은 지질학적으로나 지구과학적인 관점에서 태초에 지구의 형성과정에 많은 비가 내렸다는 것은 매우 객관적인 과학적 사실이다. 


과거 화산폭발이 지구 대부분의 지각을 형성하던 시기, 화산은 막대한 양의 수증기를 내뿜었고, 그 시기가 지나 지구의 열이 식게 되면서 막대한 뜨거운 수증기는 액체상태로 응결되어 빗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기에 머물러 있던 막대한 수증기는 정말로 아주 오랫동안(!) 비로 내렸다고 한다. 지질학자들의 추산으로 약 200만년동안 비가 내렸다고 하니, 정말 긴 장마long rain가 아닐 수 없다. 오랫동안 내린 비는 지금과 같은 바다와 호수를 이루게 되었을 것이다. 바다는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의 원천이다. 우라노스가 자식들을 처음 만들어내는 존재로서 신화에 등장하는 것과 그의 이름이 생명을 창조한 비와 물과 바다에 의미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은 단순히 창의적인 상상력만의 소산은 아닐것 같다. 

어딘가 인류의 DNA에 태초의 기억이 서려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등장하는 한 장면은 바로 이와 비슷한 인류의 기억을 잘 보여준다. 피스토리우스와 나누는 대화에서 싱클레어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꿈 속에서 자신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는 말을 하게 된다. 꿈속에서 자신이 숨을 들이마시면 하늘 높이 올라가고, 다시 숨을 내쉬면 아래로 내려가는 꿈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어류들에게 부레가 있어서, 공기가 차면 물위로 떠오르고, 공기가 빠지면 수중으로 내려가는 운동과 일치한다. 이 꿈이 말해주는 것은 바로 인간의 선조가 아직 바닷속 생명체였을때의 기억이 여전히 인간의 몸 혹은 영혼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다는 것 아니었을까. 


우라노스의 이름이 갖는 물과 비에 관련된 의미는 현대에 이르러 urinate라는 단어와도 연관된다. urinate는 소변보다는 뜻이다. 하늘에서 부터 내리는 것에 소변이라는 이미지를 덧입히는 것은 그닥 유쾌하진 않지만, 신화적인 차원에서는 맥락이 통한다. 그 뿐만 아니라, 우라노스가 크로노스에게 거세당한 것은 매우 강렬한 이미지를 신화속에 남겼다. 덕분에 비뇨기학, 비뇨기과를 의미하는 Urology에도 역시 우라노스의 이름의 흔적은 남아있게 된다. 


1781년 윌리엄 허셜은 태양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행성을 발견한다. 이 행성의 이름을 짓는 데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제시되었는데, 그중 신화에서 유래한 우라노스가 선택된다. 아마도 당시에 관측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에 있었기 때문에 최초의 근원이라는 의미를 담고자 했던것은 아니었을까. 태양계에서 우라노스가 발견된 비슷한 시기, 새로운 금속이 발견된다. 새로 발견한 금속에 행성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던 까닭에, 새롭게 발견된 이 금속은 우라노스의 이름을 따서, 우라늄Uranium으로 명명된다. 우라늄이 최초로 발견된 것은 1789년이었다. 그리고 그해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해이기도 했다. 

우라노스의 이름에서 ur은 어원적으로 액체, 물을 의미한다. 지역에 따라서 ur-은 var, wer-등의 형태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난다. 알다시피 물은 water라고 한다. w는 v와 그리고 v는 다시 u와 가까운 소리이다 보니, 충분히 그런 변형이 이루어 졌을 것으로 보인다. 따지고 보면, 워터라는 말 자체에 이미 우라노스 이름의 일부가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물에서 모든 생명이 태어나고, 또 그 물은 비로부터 연유하기 때문에 비는 어떤 의미에서 모든것의 근원이기도 하다. Ur-라는 단어의 어원이 물과 비에 연관되어 있다면, 이 단어에는 역시 궁극적인 근원이라는 뜻도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실제로 Ur-는 원시, 태초, 시작, 근원, 원형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우라노스는 태양계의 행성에도 이름을 남겼다. 태양계의 7번째 행성, 천왕성天王星의 영어이름이 바로 우라노스다. 왜 천왕성이라고 불렀을까? 우라노스의 어원을 설명하는 또 다른 의미가 바로 하늘과 천상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버지이자 남성으로 인격화된 신성을 하늘에 대응시킨 것은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남성과 양의 기운을 하늘에 연결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뿐만 아니라, 여성성과 어머니로 등장하는 가이아가 땅을 상징하고 주역에서 여성과 음의 기운이 땅을 의미하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의미하는 우라노스를 번역하는데 하늘 천天 자를 쓰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번역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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