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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Oct 05. 2023

엘렉트라 호박 콤플렉스

알고리즘영단어:amber, electra, electric

한복을 만드셨던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종종 호박을 들고 다닌 적이 있었다. 이 호박은 먹는 호박zucchini이 아니라, 저고리에 단추처럼 달려있는 꽤 무게있는 황금빛 보석(?) 호박amber을 말한다. 구슬처럼 투명하기도 하고, 동시에 황금빛, 주홍빛으로 산란되는 호박의 빛깔은 매혹적이었다. 호박은 소나무의 송진 같은 것이 오랫동안 굳으면서 만들어진 것이어서 실제 광물은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빛깔이나 촉감은 정말 보석처럼 아름다운 느낌이 있다. 옛날 기록에는 “창백한 금”pale gold로 표현되기도 했다. 비싼 보석들은 워낙 작은 것으로만 볼 수 있지만, 호박은 대개가 큼직큼직하다. 


한국에서는 먹는 호박과 소리가 같아서, 호박처럼 예쁘다는 말이 통용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영어권에서 호박amber은 여성의 이름으로도 자주 사용된다. 조니 뎁의 연인으로 유명했던, 하지만 그와의 소송전으로 더 유명해졌던, 엠버 허드Amber Heard는 호박의 영어단어인 엠버amber를 이름으로 쓰고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호박을 일렉트론electron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호박에 관련된 물리적인 성질을 지칭할때 일렉트론electron에서 파생된 단어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electric, electrical, electra들이 그에 해당한다. 


호박을 문지르면 정전기static가 일어난다. 17세기 토마스 브라운이라는 영국의 물리학자는 호박을 문지를 때 생기는 전기적 현상을 발견하고,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호박에서 생겨난 특성이니 그것을 electric하다고 자신의 논문에 기록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기electricity는 어원상 호박의 정전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공룡을 다시 복제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호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무의 진액이 흐르면서 모기와 같은 곤충들이 그 속에 갇히게 되기도 하는데, 영화에서는 공룡의 피를 빨아 먹은 모기가 호박속에 화석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설정되었었다. 공룡의 피를 구할 수 있었으니, 복제가 가능하다는 설정이 꽤나 그럴듯하게 여겨졌던 기억이 있다. 


짐 크로체Jim Croce가 불렀던 노래 “Time in a bottle”은 오래전 노래이지만 시간을 병속에 담아놓고 싶다는 표현은 정말 시적이었다. 호박속에 공룡의 피를 빨아먹었던 모기가 갇혀 있는 것은 시간을 병속에 담아 두고 싶은 소망의 약간 그로테스크한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호박속엔 3000만년전에서 9000만년전 사이의 곤충류들이 들어 있는 경우들이 있다고 하니, 판타지한 설정만은 아닌 것 같다. 

If I could save time in a bottle
 The first thing that I'd like to do
 Is to save every day 'til eternity passes away
 Just to spend them with you


If I could make days last forever
 If words could make wishes come true
 I'd save every day like a treasure, and then
 Again, I would spend them with you


냉동인간이나, 우주여행을 위한 장거리 수면, 호박속에 갇힌 모기와 병속에 담긴 시간. 모두 시간의 단면을 정지시킨 상태로 영원까지 가져가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말해준다. 영원한 정지, 영원한 순간, 영원한 현재는 수많은 시인과 몽상가와 과학자들의 이상이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엠버가 여성의 이름으로 사용된 것처럼, 엠버의 그리스식 이름 역시 여성의 이름으로 사용된다. 엠버amber는 그리스어로 엘렉트라electra라고 한다. 여성의 어머니에 대한 반감과 아버지에 대한 애착관계를 엘렉트라 콤플렉스Electra complex라고 부르는데, 오이디프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와 대응을 이루는 개념이다.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엘렉트라Electra를 일종의 개념어로 사용한 것이다. 엠버가 되었건, 엘렉트라가 되었건 결국 공통적으로 예쁜 보석류의 장신구 재료인 호박을 의미하는 것은 동일하다. 

오이디프스와 엘렉트라는 모두 소포클레스의 비극에 등장한다. 오이디프스는 테베의 왕 라이우스의 아들로 태어난다. 하지만 그는 자라서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버려진다. 버려질 당시, 차마 아이를 어쩌지는 못했던 라이우스의 부하는 아이의 발에 못을 박아 숲에 유기한다. 다행히 숲을 지나는 노부부가 아이를 발견해 오이디프스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오이디프스는 부은oid- 발pus이라는 뜻으로, 발견 당시 아이의 발에 있었던 상처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운명이 극적으로 실현되는 것은 바로 그것을 거부하려는 시도로 인해 운명이 이루어질 때다. 노부부의 손에 길러지던 오이디프스는 우연히 자신에 관한 신탁의 예언을 알게 된다. 노부부를 자신의 친부모로 알고 있었던 오이디프스는 신탁의 예언을 피하기 위해 고향을 떠난다. 하지만, 그 길에서 우연히 자신의 친부 라이우스를 만나 싸우게 되고, 결국 자신의 친부 라이우스를 살해하고 만다. 오이디프스는 아버지로부터 버려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하게 된 것이다. 운명을 거스르려 하는 것은 마치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더 세게 죄어지는 올가미같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를 만난 오라클은 만나자 마자 네오에게, “꽃병은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무슨말인지 영문을 몰라서, 주춤거리던 네오는 “무슨 꽃병?” 하면서 뒤에 진열된 꽃병을 깨뜨린다. 오라클은 말한다, “내가 꽃병 이야기를 안했으면 꽃병이 안 깨졌을지 궁금하지?” 운명은 예정된 길을 간다. 계절이 그런것처럼.  

엘렉트라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엘렉트라Electra>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엘렉트라는 동생 오레스테스와 함께 아버지 아가멤논을 살해한 자신의 어머니 클라이템네스트라, 그리고 계부 아이기스토스를 살인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엘렉트라는 결국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친모인 클라이템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를 살해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엘렉트라는 일곱 자매로 구성된 요정들 중 한명이기도 하다. 이들을 플레이아데스pleiades라고 부르는데, 천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플레이아데스가 밤하늘에 빛나는 성단의 이름이라는 것도 알 것이다. 지구로부터 444광년 떨어져 있다고 하고, 수백개의 별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가장 밝게 빛나는 별들 6-7개는 육안으로도 볼 수 있다. 갈릴레이는 이 별들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 놓기도 했다. 푸른 빛으로 영롱한 플레이아데스의 별들은 밤하늘에 보석처럼 빛난다. 일본의 자동차 브랜드 스바루Suburu는 바로 이 플레이아데스를 말한다. 파란색 바탕에 여섯 개의 별들이 박혀 있는 것은 플레이아데스의 모습을 바탕으로 만든 로고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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