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실력의 유통기한

by 사주영웅

유통기한에 관한 아주 인상적인 한 장면이 기억난다.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 던가?

중경삼림에서 주인공이 읊조리던 이 말은 사랑이라는 지극히 숭고하고 고결한 가치를 매우 세속적인 기준으로 규정하여 사랑의 그 모호한 추상성을 손에 잡히는 일상성으로 바꾸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유통기한” 이라는 말 때문에 사랑은 다분히 그 현실적인 측면이 강조되었지만, 그 기한이 “만년”이라는 말속에 여전히 마쉬멜로우 같은 낭만이 묻어난다.


현대 사회에서 제조되는 많은 물건들은 그 수명이 정해져 있다. 특히 안전과 관련된 물건들은 특별히 문제가 없어도 때가 되면 새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물론, 대대로 물려주면서 오래도록 쓰는 유서깊은 사물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나 최근에 제조된 것들일수록 이러한 유통기한 혹은 그 내구연한에 있어서 자유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하다못해, 물질적으로 수명이 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물건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주인에게 버림받는다. 오래 가지고 쓰기엔 새것이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9년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이러한 유통기한이라는 개념에 인간적인 가치를 중첩시킨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속의 “레플리컨트”들은 기업에서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낸 제품이다. 레플리컨트 들은 워낙 정교하게 만들어져서 일반 사람들은 그것이 복제인간인지 진짜 사람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복제인간을 구별해서 처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블레이드 러너라고 부른다. 대략 이정도가 영화의 기본적인 배경이겠다. 그런데, 어느날 지적으로 정교한 몇몇 레플리컨트 들이 자신들의 “유통기한” 즉, 수명이 너무 짧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들의 창조주, 즉 아버지를 찾아가서 부탁하고, 간청하다, 위협하고 살해하는 이야기. 영화속의 레플리컨트들은 자신들의 수명이 다하는 순간 마치 전력이 다된 기계가 멈추는 것처럼 그렇게 삶을 멈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에서 정말 인간적인 것이 어떤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또 그렇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레플리컨트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유통기한이라는 말에서 좀 멀리까지 와버렸다. 하지만, 한 가지 더 말해야겠다.

당신의 영어실력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토익시험의 유통기한이다. 취업을 위해, 대학원진학이나 유학을 위해 영어시험을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제출해야 하는 영어성적표는 최근 2년 이내의 성적표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다시 말해, 2년 전에 시험을 치르고 받았던 성적은 아무리 좋아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방침이 무엇을 근거로 만들어졌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떤 관계자도 어떤 설명을 하는 것을 당연히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간략하게 말해서, 당신의 영어실력은 2년이 지나면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된다는 데, 당신은 쉽게 동의가 가는가? 여태껏 아무도 당신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그런가 보다 했다면, 이번 기회에 한번 생각해보자. 정말 그런가? 당신의 영어실력은 2년을 주기로 꼬박 꼬박 시험을 봐야만 유지되는 것인가? 유통기한이 지나면 요플레가 상하는 것처럼, 당신의 영어실력도 2년정도 지나면 혀가 굳고 문법이 뒤죽박죽되며 말을 버벅거리는 서툰 영어사용자가된다는 말인가?


2년 이내의 영어성적만을 인정하겠다는 말은, 결국, 자신의 영어실력을 썩히지 않고 계속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하기위해서는 최소한 2년에 한번씩은 영어시험을 봐야 한다는 말이겠다. 물론, 실질적으로 영어시험이 영어실력을 유지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시험말고도 영어실력을 유지하고 더 높일 수 있는 고효율 저비용의 방법은 이제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전에도 지금도 영어성적을 제출할때에는 최근 2년내 영어성적이라는 유통기한이 명시된 것은 어째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장삿속만 같다. 최근 2년내 성적표 제출이라는 제한 때문에 보지 않아도 될 시험을 봐야만 하는 사람들의 수는 얼마나 될까? 시험을 주관하는 사람들은 아마 분명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데이터를 통해서 자신들이 얼만큼의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도 아마 분명히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2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한 개인의 어학실력이 일관적인 실력을 가진 것으로 유지되는 최대한의 시간일까? 당연히 그런 시간의 제한은 없을 것이다. 오로지 개인적인 편차만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5년이 지나도 실력이 녹슬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6개월만 지나도 뭔가 불편해지는 것을 느낄지 모른다. 그런데, 그러한 개인적인 편차는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2년 이내의 성적표를 일괄적으로 요구하는 이 수많은 학교와 기업과 관공서들은 정말 자신들이 요구하는 2년 이내 성적표 제출이 뭘 의미하는지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당연하겠지만 이런 형태의 규정은 대부분 관례적이고 형식적인 것이어서 그게 얼마나 실질적인가의 문제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뽑는 사람들이야 워낙 관료주의와 형식주의에 함몰된 인생을 살아서 그렇다 하더라도 성적표를 제출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한번쯤 비판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왜 2년 이내의 성적표를 제출해야 하는지?


이미 한 기관에서 오랫동안 몸담고 일했던 사람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려 할 때, 또 다시 영어시험을 치르고 실력의 건재함을 증명해야 한다는게 정말 필요한 일일까? 그렇다면 그건 영어와 관련한 한국사회의 모순을 또 한번 드러내는 셈이 된다. 영어시험을 보고 기업이나 기관에 들어갔으나, 사실상 영어와 무관한 업무를 10년동안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당연히 영어실력은 떨어질거고,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또 다른 기관에서는 그 사람에게 다시 영어성적을 요구한다. 역시, 영어와는 무관한 업무로 한 10년동안 일을 시킬 것이면서 말이다.


결국, 기업은 영어가 필요한 게 아니다. 영어성적이 필요한 게 아니다. 단지 사람을 고르는 기준이 필요한 것이다. 영어는 그 기준이라는 기능을 가장 무난하고 통상적으로 수행한다. 당연히 영어실력의 유지와 관련해서 2년이라는 기한이 설정된 것에 어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것도 아닐 것이다. 사실 영어 말고도 사람을 평가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많이 있을 것인데, 그것을 좀 더 고민해보지 않고 익숙한 늪에 편안하게 빠져들어가는 개구리 같은 한국사회의 관행이 안타깝다. 한국 기업들이 구글에서 인재를 어떻게 채용하는지 알면 무슨 소용이 있나. 감탄하고 놀라워 하면서 정작 자신은 변화하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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