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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Jan 22. 2024

자유의 여신상으로 배달되나요?


본고사가 있던 시절, 영어시험중엔 주관식도 있었다. “세익스피어”의 스펠링을 쓰게 한다거나, “자유의 여신상”을 영어로 쓰라는 문제가 출제되었다는 말도 있었다.


자유의 여신상은 영어로 The Statue of Liberty이다. 한국어로 자유의 여신상이라고 하면, 여신이라는 의미가 두드러지지만, 정작 영어에는 그러한 성별의 구분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조각상, 조상 이라는 뜻의 Statue로만 사용한다. 항간에 떠들썩한 PC주의의 관점에서라면, 그냥 “자유의 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처음 한국 번역에 여신상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사람은 신화에 해박했었던 것 같다. 자유라는 뜻으로 사용된 liberty는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자유의 여신 Libertas에서 따왔다. 자유와 민주주의의를 상징하기 위해 차용했다고 한다. 덕분에, 여신상이 세워진 섬의 이름에도 자유가 들어가게 된다. 여신상이 세워진 섬의 이름은 원래 베드로우Bedloe였는데, 1937년, 자유의 여신상의 이름에 맞춰서 섬 이름을 리버티 아일랜드Liberty Island로 개명했다고 한다.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여신상 설계는 어거스트 바르톨디라는 조각가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강철프레임은 19세기에 강철을 가장 예술적으로 활용했던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구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이 담당했다. 그리고 여기서 강철을 다룬 솜씨는 에펠탑the Eiffel Tower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리버티liberty에서 파생된 리버럴liberal 이라는 말은 보통, 관대하거나, 여유롭거나, 어떤 원칙에 엄격하게 얽매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말하는데, 리버럴한것과 통하는 면이 있다. 


자유롭기 때문에 구질서를 지키려는 보수적인 세력과 대립한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리버럴liberal하다는 말은 진보적인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통 젊은 층은 리버럴 하고 나이가 있으면 보수로 가는 경향이 큰 것 같다. 생각해보면 별로 이상하지 않다. 젊어서는 별로 이룬것도, 가진것도 없으니, 사회가 변해야 한다 생각하고, 나이가 들면 자기가 이룬 것을 지키려고 하니 개혁과 변화를 꺼리는 보수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돈과 권력 앞에서는 진보건 보수건 별 의미없다. 영어에는 리무진 리버럴limousine liberal, 혹은 라떼 리버럴latte liberal이라는 표현이 있다. 진보적인 세력의 세속적 위선을 냉소하는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이 지나치게 반듯하면 대개 위선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리버럴 아트라는 말은 종종 인문학이라는 단어와 호환되어 사용된다. 인문, 사회, 자연과학 및 예술과 같은 분야가 포함된다. 자유를 의미하는 라틴어 liberalis에서 파생된 만큼, 리버럴 아트는 자유롭고 지적인 시민을 위한 교육의 핵심으로 여겨진다. 자유로운 사람의 덕목인 만큼, 리버럴 하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예속servile되거나, 기계적mechanical이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리버럴 아트의 과목중에서 문법, 논리, 수사학 이렇게 셋은 따로 trivium이라고 불렀다. 라틴어로 trivium은 세 개tri-의 길via-이 만난다는, 일종의 교차로를 의미한다. 길이 만나는 곳이라 이것은 공개된 장소, 공통의 장소commonplace라는 의미도 자연스럽게 파생되었다. 여기서 파생된 trivia는 중요하지 않은 것, 그래서 하찮은 것, 시시한 것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공통이라는 의미 common은 평범한, 일상적인이라는 의미가 있다. 여기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로까지 확장되었다. 중요하지 않은 하찮은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에는 trifle이라는 말도 있다. 


의외로 liberty라는 말은 배달이라는 단어, delivery와도 관계가 있다. 배달이 워낙 보편화되다 보니, 딜리버리 라는 말은 아예 한국어처럼 사용되는 것 같다. 딜리버리delivery의 동사형은 deliver인데, 분리를 의미하는 de-와 자유롭게 하다, 구속에서 벗어나게 하다는 의미를 가진 liberare가 결합된 말이다. liber-에서 스펠링이 liver-로 변했다. 


그래서 배달한다는 뜻의 deliver에는 구해주다, 자유롭게 하다, 구속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더 나아가 아이를 낳는다는 뜻도 있는데, 아이를 낳는 것은 아이를 세상으로 데려오는 것과 의미가 통한다(아이를 낳는 것은 아이를 이 세상으로 배달하는 것?). 


deliver에는 두 개의 명사형이 있다. deliverance라고 하면, 구원, 해방, 자유를 의미한다. delivery라고 하면 배달, 전송, 그리고 출산을 의미한다. 서로 별개의 뜻일까? 아이를 낳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아이가 어머니의 몸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물론, 태아 상태로 있을 때, 어머니의 뱃속도 완벽한 세상이었겠지만, 어머니의 몸 밖으로 나오는 것은 제한된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출생은 곧 해방이나 자유와 연결될 수 있다. 


Liberty가 자유를 의미하는 명사라면, 동사의 형태는 liberate다. 자유는 항상 무엇인가로부터의 자유일때가 많다. 그래서 liberate에는 어딘가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의 광복절은 Liberation Day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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