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 은사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말인지 몰랐다. 은사라니, 누구 선생님인가라고 추측하기도 했었다. 알고보니 은행사거리라는 뜻이었다. 중계동 은행사거리는 강북의 대치동이라고 말할 정도로 학원이 밀집한 곳이다. 은행사거리라는 말을 이해했을 때, 막연히 나는 은행나무를 연상했다. 하지만 사거리의 교차로마다 각각 서로 다른 은행이 위치해 있어서 은행사거리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은행 업무를 봐야하는 사람들에겐 정말 편리한 사거리인 셈이다.
은행사거리에는 은행bank이 여럿 있기도 하지만, 또 실제로 은행나무ginkgo가 많기도 하다. 은행사거리를 은행나무사거리로 이해하는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닐 것이다. 금융업무를 보는 은행은 영어로 bank이지만, 은행나무는 깅코ginkgo라고 한다. 그리고 꼬치집에서 종종 안주로 먹는 은행나무 열매도 ginkgo다. 예전에 징코민gink이라는 이름의 알약이 있었는데, 은행잎 추출물이 주된 성분이라고 광고를 하기도 했었다.
Bank를 한국어로는 은행銀行이라고 하지만, 은행나무 열매도 역시 은행銀杏 이라고 한다. 한자만 다르게 쓴다. 그런데 예전 일본의 지폐를 보면 은행bank에 해당하는 의미로 Ginko라고 쓰여져 있다. 먹는 은행과 돈을 보관하는 은행을 같은 소리로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지폐에는 bank라고 쓰여져 있다. 계속 깅코라고 했더라면, 좀더 재미있었을 텐데 아쉽다.
뱅크bank는 원래 테이블, 탁자를 의미하는 단어 banca에서 유래한다. 특히 이 단어는 돈을 빌려주거나, 바꿔주는 사람의 책상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테이블은 주변보다 높이 올라와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강둑이나, 연못의 가장자리에 대새 사용하는 제방이나, 둑의 의미로 bank가 쓰이는 이유가 이해된다. 물이나 연못 주위에 흙을 탁자처럼 높이 쌓아서 물이 넘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댐dam, 제방dike, 둑bank은 모두 비슷한 기능을 하는 구조물을 지칭하지만, 댐dam이 가장크고, dike는 인공적으로 만든 제방의 의미로 보면 좋을 것 같다. bank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호수의 기슭 같은 느낌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뱅크bank는 벤치bench와도 관계가 있다. 벤치는 흔히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다. 역시 평평한 땅보다는 위로 솟아 올라와 있는 인공적인 구조물이다. 아주 핵심적인 개념으로만 본다면, 둑, 제방, 벤치, 테이블은 모두 주변보다 높이 솟아있어서 유용한 대상물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bankrupt는 파산이라는 뜻의 명사, 형용사로 쓰인다. 말 그대로 은행bank가 쪼개지고 갈라졌다는 뜻이다. rupt는 부서뜨리다, 깨뜨리다는 뜻의 rupture에서 왔다. rupture는 파열, 균열, 터져 벌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화산이 폭발하는 것은 땅을 찢고 마그마가 솟구쳐 터져나오는 것이다. 화산폭발, 분화는 eruption이라고 한다. 동사로는 erupt라고 한다.
currupt는 부패한, 부정하다는 뜻이다. 뇌물을 받거나 부도덕한 것을 의미할때도 사용한다. 뇌물을 받는 부패한 관리는 결국 망한다. 받은 쪽만 망하는게 아니라 준 쪽도 망한다. 다 함께 망하는 것이다. cur은 함께 라는 뜻의 com에서 파생되었고, rupt는 망가지고 쪼개지는 것이니, 함께 망한다는 뜻으로 풀이해도 근사하다. 부패하면 함께 망하는 것이다.
갑작스럽다는 뜻의 abrupt도 역시 찢고 나오는 것과 관계가 있다. 뭔가가 갑자기 툭 튀어 나오는 것이다. 마치 무대위의 장막을 찢고 배우가 나타나는 것처럼 말이다. 앞의 접두사 ab-는 분리나 거리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중요한 부분은 뭔가가 갈라지고 등장할 때, 그것은 대부분 느닷없는 갑작스러운 것이라는 것이다.
방해한다는 뜻으로 interrupt를 쓰기도 하는데, 의미를 분석해보면 사이를inter를 찢고 들어간다는 뜻이다. 두 사람이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데, 기어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두 사람을 떼어놓는 것과 같다. 단지 물리적인 공간을 찢는 것 뿐만 아니라 추상적으로 방해하다, 훼방하다는 뜻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벤치마킹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 단어도 역시 원래는 넓고 평평한 의미의 bench와 관계가 있는 말이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benchmark는 수준점, 측정의 기준이 되는 지점을 의미한다. 강물과 관련한 토목공사에서 강물의 높이를 측정하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기업의 경영분야에서 다른 기업의 경영이나 조직, 마케팅 전략같은 것을 비교하고 분석하여 그 장점을 보고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