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델로를 사주로 본다면 火와 土가 과도하게 강한 사람입니다. 전쟁터에서 보여준 그의 용맹함과 카리스마는 火의 열정과 추진력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한번 믿으면 끝까지 신뢰하는 그의 중후함은 土의 덕목이죠. 베네치아 원로원이 무어인인 그를 장군으로 임명한 것도 이 강렬한 불의 기운 때문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金과 水가 없다는 것입니다. 金은 냉철한 판단력과 분석력을, 水는 유연한 지혜와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오델로에게는 바로 이것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아고의 교묘한 말 한마디에 흔들리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합니다.
사주에 火가 과하면 급하고 충동적이 됩니다. 오델로가 증거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격렬한 질투심에 휩싸여 아내를 죽이는 장면을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통제되지 않은 火의 파괴력입니다. 만약 그에게 金水의 기운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한 발짝 물러서서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데스데모나는 그에게 귀한 재성(財星)입니다. 화가 극하는 것은 재입니다. 그런데 火가 과한 사람은 재성을 극하기 쉽습니다. 불이 금을 녹이듯, 그의 과도한 열정과 의심은 결국 가장 사랑하는 아내를 파괴하고 맙니다. 상관(傷官)의 작용도 보입니다. 상관은 감정의 폭발을 의미하는데, 통제되지 않은 상관은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스스로 부수게 됩니다.
데스데모나, 너무 맑아서 탁함을 모르다
데스데모나는 金水가 맑고 깨끗한 사주입니다. 金은 정의와 원칙, 고결함을 의미하고, 水는 지혜와 부드러움을 상징합니다. 그녀의 순수함, 정직함, 남편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은 모두 金水의 맑은 기운에서 나옵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델로와 결혼한 것, 남편을 따라 위험한 전쟁터로 가는 것, 죽어가면서도 남편을 원망하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金水 청수형 사주가 가진 고결함과 순수함의 발로입니다. 물이 맑으면 거짓을 모르고, 金이 정제되면 타협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土가 부족합니다. 土는 현실 감각과 자기 보호 본능을 의미합니다. 데스데모나는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약합니다. 캐시오를 위해 변호하는 것이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순진하게 선의만 믿고 행동합니다.
사주에서 오델로는 그녀에게 정관(正官), 즉 남편이자 권위입니다. 그녀의 식신(食神)은 타인을 돕고 싶어하는 선한 마음인데, 이것이 오히려 화를 부릅니다. 사주명리에서 金이 火를 만나면 극을 당합니다. 맑은 금속이 뜨거운 불을 만나면 녹아내리듯, 순수한 그녀는 오델로의 통제되지 않은 분노 앞에서 그저 스러질 뿐입니다.
상관(傷官)이 매우 강합니다. 상관은 똑똑하고 재능이 있지만, 통제되지 않으면 파괴적입니다. 이아고의 교묘한 언변과 심리 조종 능력은 바로 상관의 재능입니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고, 가장 아픈 곳을 정확히 찌릅니다. 오델로에게는 외부인이라는 열등감을, 로더리고에게는 짝사랑의 절망을 건드립니다.
편인(偏印)도 강합니다. 편인이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면 비정상적이고 뒤틀린 사고방식을 만듭니다. 승진에서 누락되었다는 작은 원한을 끝까지 키우고, 여러 사람을 파멸시키는 복잡한 음모를 짜내는 능력이 바로 편인의 어두운 면입니다.
그에게는 土와 火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정직함이나 열정, 따뜻함 같은 덕목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오직 자신의 이익과 복수만을 위해 움직이는 냉혹함이 Water의 차가운 본성으로 나타납니다. 탁한 물은 썩어서 악취를 풍기듯, 그의 지혜는 온통 악한 용도로만 쓰입니다.
세 사람의 운명적 충돌, 오행의 상극
사주명리학적으로 보면 이들의 비극은 오행의 극심한 불균형과 상극 작용에서 비롯됩니다. 오델로의 과도한 火는 데스데모나의 金을 녹입니다. 이아고의 탁한 水는 오델로의 火에 끼얹어져 증기, 즉 분노와 혼란을 만들어냅니다.
이아고는 오델로의 약점을 정확히 파고들었습니다. 金水가 부족한 사람, 즉 냉철한 판단력이 없는 사람에게 의심의 씨앗을 심으면 그것이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납니다. 만약 오델로에게 金水의 기운이 충분했다면, 냉정한 분석력과 통찰력이 있었다면 "손수건 하나로 아내의 부정을 단정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묻지 못했습니다. 火가 타오르면 이성은 사라지니까요.
데스데모나 역시 土의 부족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현실 감각이 있었다면, 위험을 감지하는 본능이 있었다면, 남편의 의심을 더 적극적으로 풀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순수한 金水는 방어보다는 순응을 택합니다. 맑은 물은 그릇에 담기는 대로 형태를 바꾸듯, 그녀는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명리학적으로 인간은 모두 불완전한 오행의 조합으로 태어납니다. 일단 십성은 10가지이지만, 기본적으로 타고나는 것은 8자 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8글자 중에서도 어떤 기운은 과하고, 어떤 기운은 부족합니다. 그 불균형이 바로 우리의 성격이고, 우리의 약점이며, 때로는 우리의 운명이 됩니다.
명리적으로 따진다면, 오델로의 비극은 그가 악인이어서가 아니라, 타고난 火土의 과다와 金水의 부족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데스데모나의 비극은 그녀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金水의 순수함이 지나쳐 土의 현실감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아고의 악행은 그가 선택한 길이지만, 그 선택의 방향성은 이미 탁한 水와 뒤틀린 木, 부족한 火土에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셰익스피어는 사주명리학을 몰랐지만, 그는 인간 본성의 불균형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습니다. 극중 인물들이 보여주는 성격의 결함은 놀랍도록 음양오행의 이치와 맞아떨어집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부족한 오행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火가 약해 추진력이 없고, 어떤 사람은 土가 없어 현실감각이 떨어지며, 어떤 사람은 金이 과해 융통성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부족함을 인식하고 보완하려는 노력입니다.
오델로에게 필요했던 것은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하는 金水의 지혜였습니다. 데스데모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위험을 감지하고 자신을 방어하는 土의 현실감각이었습니다. 이아고에게 필요했던 것은 타인을 따뜻하게 대하는 火의 열정과 정직한 土의 덕목이었습니다.
비극은 우리가 타고난 불균형을 방치할 때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인식하고 보완하려 노력한다면, 운명은 조금씩 바뀔 수 있습니다. 사주는 타고나는 것이지만, 삶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니까요.
400년 전 셰익스피어을 다시 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당신의 사주에는 어떤 오행이 부족합니까?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보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