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영단어: monitor, monster, Frankenstein
모니터monitor를 대체할 한국말이 있을까? 화면? 스크린? 명사적 의미는 대체할 수 있지만 동사적 의미의 모니터링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모니터는 현장에 없어도 현장을 살펴볼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현장을 살핀다는 의미에서 어떤 사건이나 행동의 추이를 살펴보는 것을 모니터링 한다고 한다. 지금은 한국어처럼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
챨리 채플린의 1936년 영화<모던타임즈>에는 노동자의 화장실에까지 CCTV 모니터가 달려 있어서, 사장이 노동자의 일과 중 휴식을 감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거의 80여 년 전의 영화인 것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 대도시의 CCTV는 신의 눈동자처럼 개개인의 행적을 추적한다. 조지 오웰은 이미 소설 <1984>를 통해 개인의 행동과 사상이 속속들이 모니터링 되는 사회를 묘사했다. 소설속에서 누구도 반항하지 못하던 빅 브라더Big Brother의 공고한 감시체제는, 역설적으로 그것에 투쟁적으로 저항하는 메시지를 담았던 1984년 애플의 티비광고를 통해 다시 한번 대중에게 널리 각인되었다.
모니터monitor라는 말은 16세기 학교에서 학생들의 질서와 훈육을 담당하던 상급학생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or 이라는 접미사는 행위의 동작인 사람을 의미한다. 다른 학생들을 감시하고 훈계하며 때로는 경고를 하기도 했었다.
mon-에는 뭔가를 보여주는, 혹은, 시각과 관련된 의미가 있다. 몬스터monster는 신의 경고divine omen, 징조, 사인 등을 의미하는 Monsterum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mon-은 뭔가를 보여주는, 경고의 뜻으로 혹은 훈육의 뜻으로 사람이나 신이 보여주는 경고의 메시지와 관계가 있다.
시범을 보여주다는 뜻의 demonstrate에도 역시 mon-이 보인다. Demonstrate에서 de와 mon-이 합쳐져, 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의미가 되었다. 그래서 시범을 보이다, 구체적으로 보여주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de-는 접두사로 방향을 가리킬때는 흔히 아래쪽을 의미한다. describe, descent, decrease, decline, 모두 아래라는 방향과 관계가 깊다.
인간은 위와 아래에 대한 직관적인 의미를 이해한다. 위는 정해지지 않은,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의미와 관계가 있다. 아래는 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뭔가가 정해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의미와 관계가 있다.
훈계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admonish에도 mon-이 보인다. 훈계하기 위해서는 상이든 벌이든 뭔가를 보여줘야mon-한다. 누군가를 향해서ad- 뭔가를 보여준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어원적으로 몬스터monster는 신의 경고다. 경고하는 행위는 어떤 징표를 보여주기도 한다. 환경오염이나, 인간의 오만함을 묵시론적으로 묘사하는 많은 공상과학영화에서 몬스터monster는 일종의 경고처럼 등장한다. 환경오염으로 괴물이 나타나고, 방사능 오염으로 고질라가 등장하는 것은 모두 인간의 행위에 대한 결과로 해석되는 상징이며, 동시에 오만한 과학기술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종교적인 맥락에서 Monster라는 말은 하느님의 의지를 보여주는 경고의 메시지로 해석되기도 한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Percy B. 쉘리Shelley의 아내이기도 했던 메리 쉘리Mary Shelley는 갓 스무살을 넘긴 1818년, 매우 선구적인 공상과학소설을 썼다. 워낙 지적인 집안에서 자라난 덕분에 메리 쉘리는 어릴 때부터 유럽 최고의 지성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그녀가 접했던 유럽의 과학지식은 그녀가 재미삼아 썼다는 소설,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의 바탕이 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빅터 프랑켄슈타인Victor Frankenstein은 과학자이고 의사이며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죽은 사람들의 신체 일부를 모아서, 각각을 연결해 전기로 생명을 불어넣어 인간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피조물creature에는 이름이 없다. 그저 몬스터Monster로 불릴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이름조차 없는 괴물monster을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불렀다. 괴물을 창조해낸 박사의 이름인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이 되어 버린 것이다. 몬스터는 태어나자 마자 자신의 호의가 인간에게 적의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처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도 없고,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적대적인 현실과 직면한다.
몬스터는 자신이 인간들의 맹목적인 적의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며 인간에 대한 복수와 적개심을 키운다. 마치 세상에 홀로 선 단독자처럼 고뇌하는 몬스터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고뇌이기도 하고, 성큼 다가온 인공지능이 마주할 법한 고뇌이기도 하다. 소설의 원 제목은,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 였다.
메리 쉘리는 소설의 첫 장에 밀턴의 <실낙원>에서 따온 한 구절을 제사epigraphy로 넣었다.
“창조주여,
제가 간청했습니까, 진흙을 빚어 저를 인간으로 만들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저를 끌어내달라고?“ <실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