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플러스 <카지노>배우들의 영어가 달라졌습니다.
한국에서 영어를 배워도 충분히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로 부정하기 어려운 것은 그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 영화에서 영어를 잘 하는 역할로 재현되는 캐릭터는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엉성한 영어, 서툰 발음, 장난기 가득한 딕션으로 한국식 영어는 저렇게 어설프구나 하는 인상을 의도적으로 주려고 하는 처럼 연출되곤 했습니다.
티비에서건 영화에서건 한국사람은 대체적으로 영어를 어설프게 하고, 영어앞에서 작아지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간혹 누군가가 원어민처럼 영어를 하는 설정은 대부분 돈많은 교포, 유학을 오래한 재벌집 막내아들로 등장하죠.
영어울렁증이라는 말도 안되는 인위적인 컴플렉스가 학원과 영어사교육기관 등을 중심으로 유포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영어울렁증 환자가 되었습니다. 현대인의 정신관련질환이 매일매일 새롭게 업데이트되면서 새로운 병들이 꾸준히 만들어 지고 있는것을 생각하면 크게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카카오톡 확인못해 조바심이나, 이메일 확인중독증, 포털뉴스확인강박증 등...이름만 붙이면 곧장 병이되는 세상이니까요. 2013년 기준으로 개정된 미국의 정신질환통계편람(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V)에는 대략 300여 종류의 질병이 게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은 일단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낯선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그렇습니다. 영어울렁증은 대부분 이 두가지 경우와 크게 구분되어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영어울렁증이라고 말하는 그 증상은 어쩌면 영어와는 무관할 수 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영어와 결부시키고, 또 그것을 극복하게 해주는 비법을 제시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꽤 괜찮은 사업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영어의 위상은 일종의 전형성이 있습니다. 틀린 영어는 부끄럽고, 문법에 맞지 않는 영어는 없어보이고, 콩글리쉬는 창피하고, 기초영어가 필요하고, 영어에 약하며, 외국인앞에서 작아진다는 일종의 집단 최면 같은 것 말입니다. 어디서부터 그런 전형성이 나타난 것일까요? 근원을 추적하는 일은 별개의 일이지만, 일단 그런 전형성은 분명 어떤 기업에게는 아주 유리한 돈벌이 수단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영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극복하고, 교정하고, 심지어 치료를 해야 하는 증상으로까지 여겨집니다. 울렁증이라는 표현은 그저 귀여운 과장법 이상으로, 객관적 현상을 왜곡하는 전략이 포함되어 있는 표현입니다.
우울증은 현대 대도시에서 더 자주 발병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우울증은 현상보다 훨씬 더 과장되고 포괄적인 병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기분과 마음, 정신에 관한 이러저러한 사소한 증상들을 모두 우울증이라는 병으로 만들어 놓고, 항우울제를 팔아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전략은 어떤 면에서 영어관련 기업의 영어울렁증 마케팅 전략과 비슷해 보입니다. 그것도 특히 아시아에서 그랬다는 것이죠.
디즈니 플러스의 드라마 <카지노>를 보면서 영어에 대한 생각을 잠깐 하게 되었습니다. 카지노에서 영어를 구사하는 한국사람들에 대한 연출은 기존의 영화나 미디어에서 보여지던 전형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더듬거리는 영어를 써서 억지로 웃음을 유도하지도 않았고, 유창한 영어를 근거로 주인공의 엘리트신분을 뽐내는것도 없었습니다. <카지노>에는 장난처럼 조작된 영어는 없었습니다. 온전히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써의 언어, 바로 그 모습으로 연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카지노에 등장하는 한국인 배우들이 구사하는 영어는 마치 물고기가 물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정말 자연스럽게 연출에 배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영어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배우들이 영어를 잘 한다는 이슈가 오히려 눈에 두드러지지 않게 된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코믹 캐릭터를 전문으로 하던 배우들의 영어조차도 별다른 이물감이나 억지스러운 말장난 없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연출되었습니다.
<카지노>에서 영어가 연출되는 방식은 한국에서의 영어교육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강박증, 영어권을 다녀와야 영어를 잘한다는 맹신, 틀린 영어나 한국식 악센트에 대한 부끄러움 등은 영어를 가르치면서 어렵지 않게 살필수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젊은 사람들 중에는 영어권을 다녀오지 않았어도 훌륭한 영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여전히 원어민처럼 영어를 말하고 싶고, 또 말해야 할것 같은 의식은 여전히 있는 것 같지만, 분명 예전과는 영어에 대한 의식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카지노>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영어는 어떤 면에서,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영어에 대한 기존의 일반적인 관념을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영어에 관해서라면 늘 필요이상으로 위축되는 컴플렉스는 심지어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많은 미디어에서 영어가 제현되는 방식은 늘 극단적이었습니다. 영어를 일종의 자본처럼 취급하며서, 어설픈 영어는 보통 웃음거리의 대상이 되고, 유창한 영어는 부러움의 대상으로 묘사가 되었습니다. 유창한 영어와 서툰 영어는, 마치 페라리를 타는것과 경운기를 타는 것처럼 비교되곤 했었죠.
방송의 속성이 극단적인 과장과 왜곡에 있기는 하지만, 교육의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영어에 대해서 까지 그런 전략을 적용하는 것은 별로 건강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카지노>에서는 영어를 매개로 하는 어떤 코믹한 효과나, 영어의 글래머 등과 같은 설정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영어로 진행되는 분량이 꽤 되지만, 영어는 단순히 드라마가 진행되기 위해 사용되는 언어일뿐, 영어 자체를 특별한 장치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카지노>에서 영어는 정말 순수하게 언어로서 기능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카지노>에 등장하는 한국인 배우들은 대체적으로 자기 나름대로의 영어를 구사합니다. 특별히 한국식 악센트를 강조하거나, 분절된 표현을 쓰지 않고, 간단하지만 의미가 분명한 영어를 막힘없이 표현하는 것으로 연출되었죠. 원어민처럼 유창하거나, 혹은 반대로 영어에 위축된 인물로 연출되지 않고, 대부분 각자 스타일의 영어를 사용하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영어는 단지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를 전달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것 같았습니다.
그 중, 손석구는 영어를 정말 원어민처럼 구사하고 있습니다. 설정이야 어찌되었건, 그렇게 훌륭한 영어를 하는데도, 다른 배우들의 영어와 큰 차별감 없이 수용되는 것은 이 드라마에서 영어는 일종의 배경이기 때문입니다. 배우들은 발음의 편차, 혹은 문장구사력의 편차를 막론하고 대체적으로 영어를 연기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소화하고 있는 것이죠. 예전의 한국식 연출이었다면, 배우들로 하여금 영어를 더듬더듬 말하게 하거나, 서툴게 하는 극적 연출을 통해서 여전히 영어에 대해서 한국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상의 영어울렁증을 자극하려고 했겠지만, <카지노>는 한국 사람들의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를 완전히 극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최민식의 영어는 정말 훌륭합니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말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최민식이 말하는 영어에서는 영어보다 그의 연기가 더 먼저 느껴집니다. 배우니까, 당연히 그래야 겠지만요. 최민식은 온전히 자신의 언어로서 영어를 구사하고 있는것처럼 보입니다. 전라도 악센트가 있든, 경상도 악센트가 있든, 문장이 단순하건 문법이 안맞건, 영어는 자신의 언어로 기능할 수 있게 말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최민식의 영어는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의 영어교육은 영어를 자신의 언어로 가르치기 보다는, 원어민의 영어를 모방하게 하는데 집중되어 있습니다. 맞고 틀리고에 이렇게 까지 집착하는 언어교육이 있을까요? 언어의 효용은 의사소통입니다. 맞고 틀리고는 그것을 공부로 할때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한국식의 영어는 본래 언어의 기능보다는 공부로서의 영어였다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원어민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원어민 교사들은 마치 벼슬과 능력과 자격처럼 "원어민 교사"로 인정받습니다. 역설적으로 한국에서 영어를 십수년 공부한 전공자들보다도 더 권위를 인정받고 있지요.
손석구의 영어는 원어민의 영어처럼 들립니다. 실제 손석구는 영어권에서 생활했던 적이 있다고도 하지만, 어쨌든 손석구의 영어는 정말 유창합니다. 그런데, 손석구의 영어는 오히려 그 유창함 때문에 본인의 연기가 영어에 잘 묻어나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영어가 너무 원어민 같아서, 오히려 배우와 언어사이의 이질감이 나타났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원어민 같은 영어구사가 배우의 연기를 가리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헐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극중 러시아 출신, 아랍출신, 인도출신으로 설정된 배우들은 각각 그에 맞는 영어를 구사합니다. 설정된 모국어의 악센트도 그대로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영어권에서 제작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그러한 연출이 극중 사실감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영어원어민이지만, 극중 인도인으로 설정되었다면, 일부러 인도식 영어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영어권 국가에서 만드는 영화에서, 영어권의 원어민 배우는 일부러 인도식 영어를 하는데, 한국에서 만든 영화에서는 한국인 배우가 영어를 원어민 처럼 구사하는 상황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언어는 단지 수단일 뿐입니다. 한국의 영어교육은 그런 면에서 분명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은 영어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합니다. 영어공부 자체에 과부하가 걸려서 그 너머의 비전을 보는것을 어렵게 합니다. 한국에서 영어는 일종의 자본이고 달성해야 하는 목표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영어로 뭘 할 것인가가 아닐까요?
최민식은 담백한 문장, 쉬운 표현의 영어를 통해 본래 배우로서의 연기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의 영어가 원어민처럼 유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최민식은 영어를 단지 자신의 언어처럼 사용하는 극중 캐릭터의 모습을 잘 보여준 것 뿐입니다. 한국에서의 영어교육이 지향하는 것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스타일대로 영어를 자신있게 할 수 있는것, 그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한가지 역설적인 상황에 대해서 부연한다면,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가장 많은 대상은 바로 한국인입니다. 경험하신 분들이 많겠지만, 외국인에게 하는 영어보다 같은 한국인에게 영어를 하는것은 더 어렵고, 또 매우 어색합니다. 한국이라는 장소에서, 한국어로 맺어진 관계가 외국어를 사용하는데 일종의 심리적인 장벽이 되는것이죠. 경험이 축적되면 익숙해지긴 하지만, 처음엔 매우 어색합니다. 한국인끼리 영어를 말하는게 어색한 이유는 분명, 언어적인 것은 아닐것입니다. 뭔가 심리적인, 문화적인 이유가 있을 것일텐데, 같은 이유때문에 우리는 영어를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매우 어색해 합니다. 최소한 여태까지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영어는 그렇게 재현되었습니다.
그런데, <카지노>에선 더이상 그런 식의 영어는 없었습니다. 순수하게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써의 영어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죠. 배우들이 영어를 잘해서 놀라기도 했지만, 또 각자의 배우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영어라서 놀라웠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당신 영어를 잘 하는군요" 라고 하는 표현을 인종차별적 표현으로 규정한다는 이슈가 있었습니다. 흔히, 칭찬처럼 들리는 표현이지만, 알고보면, 언어를 매개로 한 인종의 구분과 차별이 전제되어 있는 표현이라는 것이죠. 영어를 잘 한다는 칭찬은 별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영어로 뭘 말할것인가가 더 중요한 것이죠. 한국식 악센트가 있어도, 문법이 살짝 틀려도, 문장이 좀 단순해도, 의미가 분명하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