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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Apr 25. 2023

꽃이 피어서, 4월은 잔인합니다.

알고리즘영단어:flower, bloom, blood

온통 꽃잎이 흩날리는 계절이 되었다. 꽃이 피는 4월. 꽃이 핀다. 꽃이 피어난다. 꽃망울이 꽃으로 피어나는 그 갑작스런 순간의 놀라움. 눈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아도, 그 순간을 볼 수는 없다. 자연은 감추지 않지만, 인간은 그것을 보도록 허락되지 않았다.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꽃이 식물의 성기라는 정확한 관찰을 했었다. 꽃 향기를 맡거나, 꽃을 꺽는 행위가 성적인 것과 연상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꽃은 사회문화적으로 성적인 것을 환기시키는 대표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꽃이 피는 4월은 그래서 온통 생명력 가득한 계절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말에 피가 있다. 왜 꽃이 “피”어난다고 했을까. 꽃이 피어나는것bloom은 “피” blood와 관계가 있을까? 한국어로 상처에서 “피가 난다”는 말은 꽃이 “피어난다”는 말과 비슷하다.


어원적으로 봤을 때, 영어로 꽃을 의미하는 단어 flower은 blood와 관계가 있다. 플fl-과 블bl-의 소리가 비슷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꽃이 피어나는 것은 bloom이다. 피어난다는 뜻의 bloom이 피blood와 bl-이라는 같은 어원을 공유한다. 꽃이 피다Flowers bloom이라는 말은 한국어로 쓸 때, 은근히 시적이다. “꽃이 피다”라는 문장은, 꽃이 피어난다는 뜻으로도, 꽃이 피blood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영어단어 blood에서 bl-의 소리에 해당하는 어원은 원래, 상처가 부어오른 것과 같은 의미가 있었다. bl-이 의미하는 것은 상처에서 피가 흘러 나오는 것, 마치 땅에서 샘이 솟아나는 것처럼, 뭔가가 “갑자기 터져 나오는burst out” 의미를 갖고 있다. 뭔가가 수축되어 있다가, 갑자기 터져 나오는 것은 상처가 나면서 피가 흐르는 것이나, 봄철에 꽃망울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과 비슷한 운동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꽃이 피다”라는 문장은 영어로도, 한국어로도 꽃과 피의 상관성을 아주 잘 보여주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봉오리에서 피어나는 꽃으로부터 피가 분출되는 것과 같은 운동적 이미지를 연상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그것은 생명력이 분출되는 것처럼, 터져나오는 힘burst out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 표현에는 get blood from a stone이라는 표현이 있다. 바위에서 피를 얻어낸다는 뜻이다. 실현 불가능한 일을 의미한다. 사람들에게는 혈액형blood type이 있다. 한때, 혈액형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성격을 추론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혈액형으로 사람들의 성격을 구분하기 훨씬 전, 중세 유럽에서는 사람의 체질을 크게 4가지로 분류했다. 히포크라테스 이후로, 사람의 몸속에 존재하는 액체는 4가지 였는데, 그것은 황담즙 Yellow bile, 흑담즙Black bile(melancholy), 피Blood, 그리고 점액질Phlegm 이었다. 이 네 가지 액체의 혼재비율이 그 사람의 성격을 결정짓는다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신봉되었다.


동서를 막론하고 우주론의 근본에는 4라는 숫자가 있다. 가장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4라는 숫자의 경험은 4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계절 각각의 특성은 물론, 그것이 4가지 형태로 변화한다는 프레임은 인류의 문명과 문화가 발달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인간의 혈액형은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DNA는 네 가지 A, G, C, T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한의학에서도 사람의 체질을 4가지 사상으로 구분한다. 명리학에서 살피는 사주팔자도 년, 월, 일, 시 라는 4개의 변수로 구성되어 사람들이 타고난 운명을 추리하는 근간을 이룬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는 4라는 숫자를 매우 신성하게 여겼으며, 그것을 “영원한 자연의 원천이자 뿌리”라고 믿었다. 4는 완벽한 숫자로서 숭배되었고, 이것은 우주의 근본적인 원소에 대한 철학으로 옮겨갔다. 프톨레마이토스Ptolemy는 천체와 우주에 관한 당시로서는 아주 획기적인 책을 썼다. 책의 제목은 <테트라비블로스Tetrabiblos>, 곧 네 권의 책이라는 의미였다.

우주를 구성하는 본질적 원소에 대한 생각은 만물의 네 가지 뿌리라는 생각으로 확장되었고, 이것은 다시 태양, 지구, 하늘과 바다라는 실체로 나타난다. 우주를 포괄하는 거시적인 범주는 인간을 포괄하는 미시적인 범주로도 축소되었고, 이러한 4요소에 대한 미시적인 관점은 인간의 기질을 설명하는데 그대로 차용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원소에 대한 고대 서양의 이론을 4체액설(Four Humouralism)이라고 부른다. 히포크라테스에서 시작하여 아리스토텔레스, 갈레노스 그리고 아랍의 학자들은 모두 이 주장을 받아들였고, 이것은 어떤 형태로든 거의 18세기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생각은 서양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인도와 중국의 고대의학체계역시 4체액설이 한창 번성하던 때에 이러한 이론의 비유체계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고대 중국의 의학역시 그리스와 아라비아에서 중요시했던 것과 같은 몸속 요소들간의 “균형”을 매우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라비아 학자들에 의해 그리스와 중국의 문화가 상호 문화적인 영향을 주고 받았던 것의 결과로 추정된다.


기본 4가지 체액의 구성 비율이 인간의 성격을 결정한다고 믿었다는 것이 4체액설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인 4체액(Four Humors) 이전에 만물을 구성하는 것으로 여겨진 4가지 원소는 물, 불, 흙, 공기였다. 피는 봄의 기운을 가지고 있고, 따뜻하며 물기가 있다. 황담즙은 여름의 기운이고 따뜻하지만 건조하다. 흑담즙은 가을의 기운이고 차갑고 건조하다. 플렘은 겨울의 기운이고 차갑고 습한 성질이 있다.


황담즙yellow bile(choler)이 많으면 짜증을 잘 내고, 점액질phlegm이 많으면 차분하고 정적이다. 그럼 피가 많은 사람은 어떨까? 쉽게 상상할 수 있겠지만, 피가 많으면 다혈질이기 쉽다. 피가 자주 끓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피가 많다는 뜻은 활동적이며, 생기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낙천적이고, 쾌활하며 명랑하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피와 관련된 형용사로 sanguine 이라는 말은 그래서 낙천적인, 쾌활한 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흔히 말하는 우울증의 기질은 멜랑콜리Melancholy라고 부르는 흑담즙black bile이 많을 때 생겨난다.


Mel-은 검은 색을 의미한다. 사람 몸에 있는 여러 가지 호르몬 중, 멜라닌melanin은 검은 색소를 의미한다. 멜라네시아Melanesia라는 이름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피부가 검은것에서 기인한다. 멜랑콜리는 우울증으로 번역하는데, 기본적인 분위기는 어두움과 관련이 깊다. 어두운 것은 동시에 물과도 관계가 있다. 동양에서 나무는 청색으로, 불은 붉은 색으로 물은 보통 검은색으로 연관된다. 어둡고, 습한 것, 그것은 멜랑콜리melancholy의 속성이다.


프랑스의 장 폴 사르트르는 196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지만 수상을 거부한다. 자신의 문학과 사상의 독립적인 가치가 제도화된 문학과 시스템으로 연계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르트르는 <구토Nausea>라는 제목의 실존주의 소설을 썼다. 앙트완느 로캉댕Antoine Roquentin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권태로운 일상에서 느끼는 형이상학적 고뇌와 실존감에 대한 성찰이 주된 내용이다. 제목의 구토nausea는 여러 가지로 해석되겠지만, 보통은 언어와 사물간의 괴리감을 느낄 때 오는 기이한 낯설음 정도로 여겨진다.

사실, 영어제목의 nausea는 입으로 토해내는 구토vomitting 와는 다른 의미다. 그것은 일종의 멀미감, 속이 메슥거림 같은, 속이 아주 불편한 느낌을 의미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미 구토라고 번역되고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다시 제목을 수정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의 일상은 언어와 사물간의 관계가 아주 밀착되어 있어서 그 거리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과라는 단어를 100번쯤 반복해서 소리내어 말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사과라는 음성과 실제의 사과간의 거리감이 느껴질 것이다. 내가 왜 이 과일을 “사과”라는 음성으로 지칭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과 함께, 언어의 자의성이 오롯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사르트르가 말하려고 했던 구토nausea는 그런 느낌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르트르가 처음 구상했던 <구토>의 원래 제목은 <멜랑콜리Melancholy>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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