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리드하라 -운명론과 자유의지

by 사주영웅

가장 흔하게 듣는 말들 중 하나가 명리는 운명 결정론과 같은 것 아니냐는 말이다. 인간의 모든 운명이 태어날 때 정해져 있다는게 말이 되느냐, 인간의 운명은 개척할 여지가 있는게 아니냐, 인간의 자유의지는 부정할 수 없다...등등의 말들이다. 하지만 사주명리학을 운명결정론과 직접 유비시키는 것은 다소 순진한 발상이다.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롤스로이스를 타고 타워팰리스에 살게 되지는 않는다. 자유의지의 신봉자들은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 그 가능성이 0. 000001퍼센트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러한 가능성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유의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다. 하지만 남자로 태어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자로 사는 것은 일단 주어진 명대로 사는 것인데, 그 정도면 정해진 팔자가 있다고 봐야하지 않나? 재벌집 아들이 재벌로 살고, 가난한 집 자식이 가난하게 사는 것, 이거 어느정도 정해진 것 아닌가?


자유의지에 대해 인정하는 이격된 가능성을 똑같이 사주팔자에도 열어두어야 하지 않을까? 자유의지로 모든 것을 선택한다 해도, 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경우는 없다. 그렇지만 그러한 희박한 가능성이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주명리 역시도 모든 사람은 자신의 팔자대로 산다고 했을 때, 실제 그렇게 팔자대로 살게 되는 사람의 퍼센트가 낮다고 해서 그것이 사주팔자를 부정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의 공부로 보건데, 명리는 정해진 대로 살겠다는 것보다, 단지 정해진 길을 가는데 흉한 것은 피하고 길한 것은 취하겠다는 다소 소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추길피흉追吉避凶.


명리를 신봉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팔자를 바꾼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일단 명리를 신봉하면 자기 삶의 그 어떤 변화도 모두 명리의 섭리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면 일체의 자유의지를 인정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이 존재한다면 신을 부정하는 자신의 자유의지 조차도 이미 신의 의지가 개입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리를 신봉한다고 해서 자유의지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주명리와 자유의지의 관계는 매우 복합적이고 상충된 것일 수 있지만, 또 상호보완적인 것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자유의지는 아주 포괄적이고 기만적인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 자유의지를 통해 무엇을 바꾸려고 하는가? 자유의지를 발현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거스르려고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자유의지에는 이러한 결정론적인 전제가 깔려 있는 것 아닌가? 자유의지를 의도적으로 포기하면 자기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 사람들은 알 수 있지 않을까? 미래의 일을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유의지와 결정론은 이렇게 서로 뒤엉켜 있다.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역동적인 관계는 명리학과 외부세계와의 관계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명리학적 체계 내에서도 이미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분기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당사주라고 하는 것은 당나라 시대 연지(띠)를 중심으로한 체계이다. 당사주의 바탕이 되는 이허중 명서를 지었던 이허중은 당시 정부의 관리까지 했던 인물이다. 자기 자신이 고위공직의 자리에 있었고, 그것이 가문의 입지와 연관되어 이허중명서의 체계는 개인보다 집안을 중시하는, 그래서 사주의 체계에서 자신의 자리보다 조상의 자리를 더 중시하는 체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 졌다.


하지만 그 이후, 이허중명서를 중심으로한 명리학적 체계는 서자평의 자평명리로 전환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중국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타고난 신분제 사회에서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개인의 의지와 능력을 중시하는 세력들을 중심으로 여기저기서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던 시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가문중심의 세계관이 개인 중심의 세계관으로 이동해 같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서자평은 “연해자평”이라는, 조상 중심이 아닌, 자기 자신 중심의 새로운 명리학적 체계를 제시하게 된다. “자평”이라는 말은 저자 “서거이”의 호인데, 말 그대로 물은 항상 수평을 이룬다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사회적인 의미에서 조화와 균형을 의미하기도 하고, 개인적인 의미에서 운명의 극적인 기복 없이 평탄하게 살아가는 것을 지향하려고 했던 바람의 메시지일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명리학적 체계 안에서도 이미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일종의 운명적 요소가 절대적인 영향을 갖고 있는 체계에서, 개인의 의지와 능력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는 체계로의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은 명리학을 인간의 자유의지설에 대립되는 단순한 운명론으로 취급할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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