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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길을 찾는법

알고리즘영단어:orient, orientation, origin,

by 현현

학교건 회사건 새 출근과 새 학기의 시작은 늘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으로 분주하다. 어린이집에서부터 기업, 대학원까지, 첫 출근, 첫 날, 첫 수업의 오리엔테이션은 필수적이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에는 대부분 그 과정의 개요, 준비할 것과 목표, 그리고 수업 방향을 설명한다.

오리엔테이션은 물리적으로 방향을 정한다는 의미가 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어디론가 떠나기 전에 방향을 잡는것은 매우 중요하다. 오리엔트orient는 해가 뜨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오리엔테이션은 동쪽으로 방향잡기라고 할 수 있다. 해는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The Sun rises in the east and sets in the west. 일단 동쪽이라는 방향을 잡아 놓으면, 다른 방향과의 관계 파악도 쉽다.


Oriented되었다고 사용하면, 어떤 방향을 지향한다는 뜻이 된다. Money-oriented 라고 하면 금전지향적이다 라고 할 수 있다. 반대어 dis-를 결합하면, disorientation이 된다. 방향을 잃어버리게 한다는 뜻이다. 형용사처럼 사용해서 disoriented 라고 하면 방향bearings을 잃어버린, 갈 곳을 찾지 못한다는 뜻이다. 미로maze속에서는 금방 길을 잃고 만다.


미로는 흔히 maze와 labyrinth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Maze는 흔히 보는 미로찾기처럼, 여러 곳에서 시작해서 여러 곳으로 탈출 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maze, 혹은 amaze는 동사로 사용되면,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한다는 뜻이 있다. 어메이징은 <amazing grace>라는 노래에 등장하는 단어로 매우 친숙한 말이기도 하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놀라운 은총” 정도의 의미라고 하겠다.

라비린스labyrinth는 미로와 비슷한 말이지만, 보통 미궁迷宮이라는 말로 번역한다. 뭔가 풀 수 없는 문제 혹은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나 처지를 의미한다. 미궁은 애초에 의도해서 만들었기보다, 본래 존재하는 성질이 미로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들어가는 곳과 나오는 곳 역시 한곳만 존재한다.


이카루스Icarus의 신화는 라비린스와 관계가 깊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라비린스는 미노타우루스Minotaur라는 반은 인간, 반은 소의 괴물을 가둬두기 위해 다이달로스Daedalus가 만든 일종의 미로같은 감옥이다. 한번 들어가면 누구도 다시 돌아나올 수 없다는 이 미궁에 들어가서 미노타우루스를 해치우는 것은 바로 테세우스다. 그를 사랑하게 된 적국의 공주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미로를 되짚어 나올 수 있도록 명주실을 주었다. 덕분에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루스를 해치우고 미로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사랑이야기는 비극으로 흘러간다.


다이달로스는 철을 다룰 줄 아는, 매우 솜씨가 좋은 장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밀납wax으로 날개를 만들어서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하늘로 날아 오른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한다.



“너무 높게 날지 말아라. 태양이 날개를 녹게 할거야. 너무 낮게 날아도 안된다. 바닷물의 물방울에 날개가 젖게 된다”


"Do not fly too high, or the sun will melt the wax. Do not fly too low, or the sea spray will dampen the feathers."



하지만 이카루스는 아버지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태양 가까이까지 솟구쳐 오른 그의 날개는 그만 녹아내리고 만다. 비극으로 끝난 비상이었지만, 이카루스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상징으로 남았다.


20세기 초, 오리엔트 익스프레스The Orient Express 라는 철도가 있었다. 파리Paris에서 비엔나Vienna를 거쳐 이스탄불Istanbul로 향하는 열차였다. 1934년 영국의 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는 <오리엔트 특급열차 살인사건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을 출판한다. 사건을 발로 뛰는 것 보다 주로 두뇌로만 의지해서 추리하는 것으로 유명한 에르퀼 푸아로Hercule Poirot는 이때 등장한다.


오리엔트에는 떠오르는 태양, 동쪽, 태양이 떠오르는 하늘 등의 의미가 있다. 해가 뜨는 곳으로부터 생명이 기원한다고 믿었기 때문인지 생명의 기원, 원천, 근원을 의미하는 오리진Origin은 오리엔트와 같은 어원적 뿌리를 갖는다.


오리진origin은 상승, 출발, 시작, 원천의 의미로 시작해서, 뭔가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리엔트orient는 oriri의 형태로도 나타나는데, 이러한 형태는 떠오르다, 상승한다는 의미의 rise와도 관계된다.


rise는 보통 해가 뜨거나, 물가가 오르는 것처럼 스스로 올라가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영화화 되기도 했던 소설,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 는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헤밍웨이의 중요 작품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이후 남겨진 피폐한 육체와 공허한 내면을 흔들리는 사랑과 엇갈리는 인연에 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첫 장을 넘기면 유명한 <전도서Ecclesiastes>의 한 구절이 등장한다.


“한 세대가 가면, 또 다른 세대가 온다. 하지만 대지는 변함없이 지속된다. 태양은 다시 떠오르고, 다시 태양은 지며 자신이 떠오른 곳으로 서둘러 발길을 재촉한다.”


"One generation passeth away, and another generation cometh: but the earth abideth for ever. The sun also ariseth, and the sun goeth down, and hasteth to his place where he arose.



전쟁이라는 비극이 닥쳐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쓰디쓴 좌절과 절망을 겪어도, 태양은 다시 뜬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세지는 잠시뿐, 태양이 다시 뜬다는 그 변함없는 항상성은 때로 삶의 모든 드라마틱한 사건을 하찮은 것으로 느끼게 한다.


자신에게 아무리 중요한 일일지언정 그것은 태양의 루틴을 바꾸지 못한다. 자신에겐 우주가 무너질 만큼 커다란 사건이라 해도, 그것이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깨달음. 태양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또 다시 떠오른다는 메세지는 그래서 쓸쓸하다.


헷갈리기 쉬운 영단어의 목록에는 항상 rise와 raise가 포함된다. rise는 스스로 올라간다는 자동사라면, raise는 뭔가를 올린다는 타동사다. 만약 질문이 있다면, 손을 들어야raise your hand 한다. 회사원들의 월급이 인상되는 것은 raise라고 한다. 월급은 저절로 오르지rise 않는다.

동쪽을 orient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서쪽은 occident라고 한다. occident에서 -cid는 뭔가가 떨어진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사고, 사건을 말하는 accident, 폭포를 의미하는 cascade에는 모두 occident와 공통의 어원을 갖고 있다. 스펠링은 차이가 나지만 많은 경우 cid, cad, ca-의 형태로 나타난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관점은 최근 수 십 년간 사회, 문화, 문학분야의 활발한 주제이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피아노를 아주 잘 쳤던 영문학자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의 책,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은 서구가 어떻게 동양을 바라보았는지를 보여주는 사회문화역사적인 성찰을 기록하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사람들이 동양에 대해 갖고 있는 문화적인 편견을 의미하기도 한다.

데이빗 헨리 황의 희곡play <마담 버터플라이M. Butterfly>는 아마도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을 극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욕망에 사로잡힌 서양 남성의 관점이 동양을 어떻게 여성화하고 예속화 하려고 하는지를 매우, 농밀하고 내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중국 주재 프랑스 대사관 직원인 르네 갈리마르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노래를 부르던 아름다운 여성 송 릴링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랑은 거짓환상에 불과하며, 서양의 남성이 자초한 이상적 여성의 이미지에 불과했음이 밝혀진다. 르네는 오랫동안 함께 살면서도 자신이 사랑한 송이 사실은 남성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었다. 송은 결국 남성으로 밝혀지고, 끝까지 자신이 사랑한 사람이 남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던 르네는, 결국 여장을 한 후 자살한다. 치명적인fatal 오리엔탈리즘이다. 여장남성, 혹은 남장여성cross-dressing이라는 설정은 세익스피어 시대부터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되던 드라마의 장치였다.


드라마의 설정을 현실로 착각하는 것은 치명적으로 위험하다. 어쩌면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에서 만든 설정을 실제라고 믿는 것에서 기인한 치명적인 착각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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