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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기 Jul 13. 2019

서울의 달

서울의 달은 건물들 사이로 사라졌다 보였다 사라진다. 그 사이 누군가는 가족들과 먹을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들으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누군가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그르릉 거리는 소리를 듣고 누군가는 원두를 갈고 천천히 커피를 내리고 누군가는 주말이 끝나고 있을 경쟁PT를 위해 머리를 싸매고 누군가는 온동네를 다니며 동네사람들이 내다둔 쓰레기를 수거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셔츠의 옷감을 고르고 누군가는 한강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쐬고 누군가는 사랑을 느끼고 누군가는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달이 뜬 밤하늘이 가득히 보이는 서울의 달동네에서는 시골에서 상경한 제비와 순박한 시골남자와 달동네의 여인이 드라마같은 이야기를 펼쳐낸다.

달, 지구, 태양, 은하, 우주. 현대의 관측과 이론에 따르자면 무한히 작은 점에서부터 시작된 시간, 공간, 에너지는 우주를 이루고 태양과 지구와 달을 만들었고 인간을 만들었다. 태양은 언젠가 지구를 넘어 화성까지 집어삼킬만큼 거대해지고, 우주는 점점 더 빨리 팽창하며 언젠가는 모든 것이 희미해지고 빛도 사라지고 자유 에너지도 사라지는 열사망에 이른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는 전 세계로 퍼져 나아가며 식물을 먹고 동물을 먹고 자연을 동경하고 두려워하고 창작을 하고 동물을 가축화하고 식물을 경작하기 시작하고 사회을 이루고 재화를 교환하고 화폐를 만들고 종교를 만들고 윤리를 만들고 전쟁을 하고 사랑을 하고 질투를 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무력함을 느끼고 평안함을 느끼고 경외심을 느끼고 화를 내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상업을 하고 학문을 만들고 기술을 발전시키고 산업화를 이루고 도시를 만들고 우리는 그 도시에서 살면서 먹고 살 돈을 벌고 나중에 먹고 살 돈을 벌지 못할 때를 걱정하며 지내고 당장 며칠 뒤에 있을 업무를 걱정하며 지낸다.

우주의 열사망과 일의 압박, 일상, 감정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우주를 생각하면 한없이 하찮게 느껴지는, 하지만 한사람 한사람에게는 자신의 세계를 뒤흔드는 개개인의 감정들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서울에 뜬 달을 보며 걷다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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