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에 두 번째 사무소를 퇴사하고, 6월에 사업자를 냈으니 내년이면 사업을 한 지 10년이 된다. 그동안 자영업의 흥망성쇠를 몸으로 겪으며 상실과 좌절의 아픔을 체득했다. 그래도 기왕이면 성공도 크게 해 봤으면 좋으련만 3년 남짓의 달콤한 성장기는 최근 심각한 건축 불황으로 녹아내렸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내가 잘해서 성공했다고 외치고 다니는 사람들을 동경했던 적이 있다. 진짜 혼자서 잘해서 그렇게 큰 부를, 또는 사회적 명성을 얻었구나 싶었다. 그러다 문득 '공정하다는 착각' 책 속의 내용이 떠올랐다.
마이클 조던도 200년 전에 태어났다면 지금의 조던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대전에 휘말린 수많은 군인들과 시민들은 자기 선택권이 없었다. 지금의 전쟁 현장에서 개인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대부분 시대에 휘말려 살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사실 위의 말은 모든 인간은 시대적 혜택을 받고 있으므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논리에 쓰였다.)
그러니까 내가 작년 건축 불황으로 망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다. 금리 상승이 없었다면 대출이 수월했을 것이고 사람들은 대출을 발판 삼아 건물을 지어 올렸을 것이다. 10년의 경기 상승과 하강의 사이클이 건축 경기와 맞물린 것은 경제에서 바라보면 당연한 얘기다.
코로나가 끝나고 불장이던 주식이 끝나갈 때쯤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중 '슈카월드'에서 슈카는 이렇게 얘기했다.
주식이 떨어지는데, 어쩌면 좋아요?라고 사람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어쩌긴 뭘 어째요! 떨어질 줄 몰랐어요? 주식이 한없이 오를 수만은 없잖아요. 언젠가는 떨어질 것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떨어지기 전에 미리 '대비'를 해야죠. 그래서 분산투자해라 장기투자해라 하지 않습니까? 떨어지고 있을 때는 '대응'을 하는 수밖에 없어요.
주식뿐이랴. 모든 일이 마찬가지이다.
미리 '대비'를 하고 있다가 상황이 닥치면 '대응'을 하는 것이다.
작년 나의 상황을 비추어보면 둘 중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처음 보는 저금리 시대, 저금리를 발판 삼아 건물을 지어 올리는 사람들, 그 덕에 작은 사무소까지 콩고물이 떨어졌다. 그것이 나의 능력인 줄 착각했다. 사업에는 흥망성쇠가 있기 마련이고 그중 '흥'의 한 부분은 순전히 사회 덕분이었다. 사실 내가 잘해서 그런 것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작년 말까지 이어진 내 사업의 phase01은 끝을 냈다. 최소한의 일만 남기고 아내와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간간이 글을 쓰고 생각을 없애고 몸을 움직였다. 두세 달의 시간이 지났고 어느덧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상태가 되었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길게 쉬어서 통장이 '텅장'이 되기 전에 시작할 수 있었으니.
그동안의 어려움을 발판 삼아 올해는 나름의 전략을 세웠다.
고금리로 얼어붙은 민간 업무보다 공공 업무의 비중을 늘리고 홍보에 좀 더 신경을 쓰려고 했다. 다행히 설계공모가 당선되어 공공 업무를 할 수 있었다. 여러 매체에 소개된 덕분에 좋은 건축주를 만나 민간 수주도 했다. 더 이상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외부 환경에 안달복달하지 않기로 했다. 시대의 흐름에 흔들리는 일보다 우리 사무소가 무엇을 만들지 고민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내겐 phase01의 실패가 좋은 경험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