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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장 Jan 30. 2024

설계는 덜어내는 것과의 싸움

제주의 단독주택을 제안한 이야기

작년 중반쯤 직원을 채용하고 제주에 있는 집을 의뢰하신 분이 있었다.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시는 분이었는데 제주에 15평 정도의 작은 집이 있고 노부모를 모시고 살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기존 주택을 리모델링하며 증축을 조금 했으면 한다는 얘기였다.


로드뷰로는 잘 보이지 않아 일정 비용을 받고 현장 답사를 하기로 했다. 마침 직원을 채용하고 얼마 되지 않아 워크숍을 겸해 가기로 하고, 당일 택시를 타고 도착한 현장에는 대단한 바람이 불었다.


"여기는 이 정도가 보통이에요."


그래서 제주의 전통가옥은 집을 받치는 기단도 낮고 지붕도 낮다. 조상들의 키가 작았던 이유도 있지만  모두 비와 바람 때문이다. 현대 건축 기술에서 저층 건물은 풍하중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데도 제주 바닷가에 높은 건물을 지을 때면 서울에서 1년에 한두 번쯤 경험하는 태풍의 바람을 상시로 경험할 각오를 해야 한다. 설계상 문제가 없는 유리의 크기를 정하고 시공했는데도 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 유리가 휘는 모습은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그렇게 제주 워크숍을 겸한 현장답사를 마치고 설계 제안을 했다.


코로나를 지나며 급격하게 오른 건설비용에 놀라셨고 25평 남짓의 증축에 놀라신 눈치였다. 상담을 하며 원하는 내용을 반영하면 이 정도의 규모이고 규모는 줄일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도 함께 드렸다. 리모델링 비용은 철거비용을 포함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그리 싸지 않다, 그 비용으로 온전한 집을 짓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증축하는 부분을 가정집으로 쓰고 리모델링하는 기존 집은 서재로 사용하시는 게 좋겠다는 것이 요지였다. 리모델링하는 부분은 철거만 맡기고 조금씩 직접 수리하셔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드렸다. 그 내용에 충분히 수긍하셨고 노부모를 새집에 모시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어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셨다.


결국 예산을 좀 더 마련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러 고맙다는 말과 함께 1년쯤 뒤에 다시 해보자는 말을 남기고 그날 상담을 끝냈다.


설계 제안은 늘 조심스럽다. 그래도 좋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의뢰인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는 편이다. 부담스러운 부분은 조금씩 덜어내면 된다.


그런데..

덜어내는 것이 참 어렵다.




2층의 새 집과 리모델링을 할 헌 집
새 집에서 노부부가 자식의 방에 불이 켜져 있는지 알 수 있었으면 했다. 작은 심리적 교류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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