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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장 Aug 28. 2024

크리틱(critic 비평가, 평론가, 비판하는 사람)

크리틱에 대하여

최근 기회가 닿아 uaus(대학생 건축 연합)에서 하는 파빌리온 설계에 크리틱을 하고 있다.

최근 3차 크리틱을 마무리했고 1:1 목업을 앞두고 있다.


혹자에게는 크리틱이라는 말이 조금 낯설지도 모르겠다.

영어 사전에는 크리틱이라는 말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critic  

    비평가, 평론가  

    (무엇의 나쁜 점을, 특히 공적으로)비판하는 사람  


이렇게 찾아보니 그다지 좋은 말은 아닌 듯하다.

비평이나 평론이라는 것이 좋은 점 보다는 좋지 않은 점을 찾는 경우가 많다 보니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이는 인간의 본성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하는데,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뇌구조가 무언가가 해를 끼치거나 좋지 않은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 판단하다 보니 자연스레 생겨난 말일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


건축 설계에서는 크리틱이라는 말이 굉장히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일단 대학교에서 받는 건축 설계 수업을 줄여서 크리틱이라고 말한다.

각론은 이론 수업으로, 설계수업은 실기 수업으로 분류되곤 하는데 실기 수업 특성상 결과물을 만들게 되고 그것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얘기를 나누면서 점점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 수반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 크리틱 방식이 그다지 탐탁지 않다.

주입식 교육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뭔가를 배우고자 하는 방식이 서로 간 대화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하다 보니 간혹 답답한 상황이 발생한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건 본인이 잘 생각해 봐야지요.'


어쩌면 대학 수업의 본질은 스스로 공부할 것을 찾는다는 점에서 가장 진보된 교육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초적인 지식 없이 크리틱을 수반하는 수업은 배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배운 것 없이 욕만 듣는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내가 그랬었다.) 요리를 배워야 하는 사람에게 음식부터 만들라고 시키는 것도 모자라 그 음식을 평가하겠다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공간이란 무엇인가.

솔리드와 보이드는?

좋은 공간이란 무엇인가.


나름의 결론을 내지 않으면 대학 수업을 마칠 수 없겠다 싶어 결론을 냈다.


공간이란 점, 선, 면의 요소로 제한된 비어진 것

솔리드와 보이드는 공간의 요소로 비워진 것의 정도를 구분하는 것

좋은 공간이란 필요(프로그램)에 따라 사람에게 감흥을 일으키는 것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물에는 전환이 있다.

진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반드시 나오는 꺾임.

콘크리트 벽을 따라 걷다가도 짜잔 하며 나타나는 탁 트인 공간과 같은 것 말이다.

피터 줌터의 작은 기도원처럼 탁 트인 공간에 묵직하게 서 있는, 나무가 타서 그을려진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동굴 같은 것 말이다.


이렇듯 좋은 공간이란 때와 장소에 따라 알맞게 느껴지는 공간이다.

도서관이라면 책을 읽기에 좋은 공간, 추모소라면 추모하기에 좋은 공간을 만들면 된다.


그런데 그런 공간을 만들기가 참 어렵다. 말처럼 너무 추상적이어서 실체적 진실이어야만 하는 건축이라는 특성과는 큰 간극이 있다. 예를 들면 어떤 미술가에게 추상화를 보고 저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그려보라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건축 수업에서는 크리틱이라는 방식을 통해 의도하고자 하는 추상적 공간에 대해 실체적 공간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추상적 말로 시작한 공간이 크리틱만으로 실체적 공간에 다가설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건축가의 공간감이라는 것이 결국 그가 다양한 방식으로 습득한 체험적 지식일 수밖에 없으므로 추상적 공간이 실체로 변환될 때는 반드시 개인의 경험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크리틱이라는 수업의 특성상 수업을 이끄는 교수의 체험적 지식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간의 특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론화할 수 있고 그 이론을 배우고 시작한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요리를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음식을 내오라 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 크리틱은 어떠했는가.


결론적으로 나의 경험에 기반해 크리틱을 할 수밖에 없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파빌리온 경험은 한 번뿐인 사람에게 파빌리온 크리틱을 받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으나 미천한 지식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판단으로 그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려 애썼다. 그것이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되었는지 플러스 요인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히 부족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면 가급적 최대한 더 나은 방향을 제안해 주고자 했다. 이 마음이 전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받아들이는 것은 당신들의 자유다라는 말이 면피를 위한 말은 아니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이제 최종 평가가 남았다.

좋은 평가든 나쁜 평가든 개의치 말라고 꼭 전해주고 싶다.

평가를 하는 그들 역시 지극히 사적인 경험에 의존할 뿐이니.


다치지 말고 잘 마무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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