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무실은 설계 공모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공공 건축에 대한 막연한 꿈에서 시작한 공모 참여가 사무소의 성격을 이리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 올해처럼 이렇게 어려운 업계 상황이 닥치니 너도 나도 공모에 뛰어들어 대단히 혼탁한 시장이 되어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기근이 들 때 음식이 다양해진다고 하는데 이 분야도 기근이 들었으니 더 다양해질까.
내 대답은 글쎄다.
음식은 자본이 아니다.
생존에 필요한 필수재다.
먹을 게 없어 어쩔 수 없이 주변에 있는 식물들을 잘 관찰하고 이리 저리 시도해 본 결과가 음식이 다양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과거로부터 건축은 권력이었고 권력자들은 건축가들을 이용했다.
지금 서울의 건축가들은 서울 시장의 권력욕에 놀아나고 있다.
광화문에 태극기탑을 세운다고 하지 않나 노들섬에 수천억짜리 산책로를 만든다 하지 않나 한강에 링 같은 걸 만든다고 하질 않나.
권력이 건축을 좋아했던 이유는 잘 보이기 때문이다.
정책은 삶에 스며들 뿐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건축은 권력의 하수인쯤 되는 것이다.
권력은 돈이고 돈이 있는 곳에 비리가 자라난다.
그러니 이 시장에는 비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 온상이 지금의 공모 시장이다.
권력은 감시받아야 한다.
국가권력은 삼권분립에 의해 국회와 사법부의 견제를 받는다.
더불어 언론의 감시를 받는다.
건축 권력은 어떠한가.
아무도 감시하지 않는다.
기껏 하는 것이 서약서를 쓰는 일이다.
지나가는 개가 웃는다.
일제 시대 친일파도 서약서는 수백 번 썼을 것이다.
잘만 배신하고 지금도 잘만 산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나마 겨우 드러난 것이 최근 LH 감리 선정과 관련한 비리다.
집에 바퀴벌레 1마리가 보이면 이미 수십 마리가 돌아다니는 것이라 했다.
그것 하나일까.
그래서 감시자가 필요하다.
청렴서약서를 쓰면서 공정해지자고 외치기만 할게 아니라 심사과정의 감시자가 필요하단 말이다.
누가?
시민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배심원처럼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추가로 참여시켜서 공모 과정의 공정성을 평가하도록 하자.
현재 예비 심사위원을 참여 시키는 방법을 확대하여 건축 배심원 제도를 제안한다.
그 돈이래봤자 전체 사업비의 0.01%에도 미치지 못한다.
슬프게도 이런 대안이라도 제시하는 이유는 심사위원의 전문성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떨어졌기 때문이다.
자괴감이 들면서도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고칠 수 있다면 시도해 볼만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