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의 공간학
병실 창문 밖을 바라보던 사람에게,
창문 밖의 꽃 한 송이가 피어나던 생기가 그를 살려냈다는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
응급실에는 창문이 없다. 24시간 동일한 환경이 나로 하여금 시간을 잊게 만들었다. 2박 3일을 있는 동안 내가 밥을 먹어야 하는지 잠을 자야 하는지는 나의 배고픔 수면욕, 벽에 걸린 시계만이 알려주었다. 그조차도 한 밤을 보낸 후에는 잠을 거의 자지 못해 지속되는 수면욕으로 시계조차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백화점을 설계할 때 창문을 내지 않는 이유를 시간을 잊고 쇼핑에 몰두하게 하려는 자본가의 탐욕에 빗대곤 하는데 다른 의미로 응급실의 창문은 환자에게만 집중하기 위한 배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때로는 그 배려가 보호자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아내의 추천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완독 했다. 작가 본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아버지 삶에 집착한, 소설이라기보다 에세이 같았다. 지나치게 생생해서 더욱.
아내에게는 '재미가 없다' 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불편했다'가 더 맞는 말인 것 같다. 벌써 십 년이 다되어 가는 내 아버지의 죽음을 보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나지 않는 나를 다그치며 모두가 슬퍼하는 와중에 나는 왜 슬퍼하지 않는가 이해하지 못했던 그때의 경험처럼. 장례를 지내고 난 후 그렇게 3일을 꼬박,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글을 썼다. 그때부터였다. 글쓰기가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게.
누구에게나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건 개인의 경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 책을 겨우 읽어내며 얻은 것이다.
빨치산의 딸로 태어나 그 이야기로 소설로나마 풀어냈으니 작가님에게는 이 책이 약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