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이 나아가야 할 길

by 박소장

설계 공모가 더 공정해졌으면 했다.


심사위원을 바꿀 권력이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공정해 보이는 심사위원으로 구성된 공모전에 참가하는 것 정도였다. 그런데 그 세계를 5년에 걸쳐 관통하며 겪은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 보니 기획부터 결과의 전 과정에 시민, 전문가, 행정가가 치열하게 토론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했는가. 정치인의 공약이었나, 정말로 주민이 원하는 것이었나. 어떤 시나리오가 있는가. 시나리오라는 게 대체 있기는 한 것인가.


건물만 덩그러니 지어놓고 한 달에 한두 번 쓰는 건물이 허다한 이유는 이런 것들 때문이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그래서 우리 지역에 뭐라도 있으면 세금 혜택을 받는 것 같으니 주민 복지 시설은 늘 환영받는다. 일 년에 한 번을 가도 쓰는 건 쓰는 거니까. 그렇게 버려지는 돈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복지니까.


이런 식으로 낭비되는 세금이 얼마나 될까. 정작 그 건물은 꼭 필요한 것인가.


지나고 보니 내가 했던 프로젝트들이 다 그런 것들이었던 것 같다. 정치인 공약으로 시작하고 행정가들의 실적 욕심에 국가 예산을 따낸 프로젝트들, 그리고 다시 정치인이 개입하고 준공 테이프를 끊는다. 다음 선거에 자신의 업적을 세울 한 줄, 그들은 그게 필요했다.


프로젝트 자체만 보면 어떤가. 온갖 심의에 누더기가 된 프로젝트는 차치하고 그 안에 시민은 없다. 건축사(가)들의 아집, 혹은 그럴듯한 말이 작동하는 우리들만의 판에서 일과 돈을 따는 것 말고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중에도 옳다고 믿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10% 정도는 존재하고 그 사람들이 조금씩 개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축 기획부터 준공까지의 전 과정에 시민, 행정가, 건축사(가)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정가들은 싫어할 것이다. 온갖 자문은 일의 속도를 늦춘다. 임기 내에 조 단위 사업을 끝내겠다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있는 한 이 일의 시작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알 길은 전혀 없다. 타당성 조사의 허들이 있지만 정치인의 뚝심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치인 이력 한 줄에 그 많은 세금을 투입하기엔 아깝지 않은가. 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더 많이 만들었으면 한다. 지금도 자문이라는 과정이 있긴 하지만 너무나 부족하다.


공모전 이후의 공청회를 더 확대 운영해야 한다. 그 과정은 계획안을 부수는 것이 아닌 계획안을 더 알차게 쓸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어야 한다. 민간 설계처럼 실 사용자들의 의견을 듣고 충분히 반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집도 짓고 밥도 짓는 것이니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빨리빨리도 좋지만 숙고하는 일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시공 과정도 마찬가지다. 시공사의 하청에 하청은 여전히 만연하다. 입찰 시스템을 당장 개선하고 싶지만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진작에 했을 것이다. 그게 어려운 일이라고 인정하자. 그렇다면 입찰부터 시공의 전 과정에 법적인 권한이 있는 위원회가 필요하다. 건축의 전 생애에 걸쳐 시민, 전문가, 행정가가 수시로 만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민주사회는 결과만큼 절차도 중요하다. 동시에 절차는 결과를 위해 존재한다.


내 주변에 있는 건축물 중 이런 건물이 하나 있다. 서종의 '말꽃'.

민간단체가 추진해 학교의 부지를 빌려 국가의 예산으로 건물을 짓고 학생들과 부모들이 사용한다. 다양한 강좌가 열리기도 하고 아이들, 부모들이 잠깐 기다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건축이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공공 건축의 지향점이자 프로세스'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수상한 건물의 공사비를 댄 교육청은 이 민간단체를 주시하며 한 톨의 허점도 허락하지 않는다. 여전히 아는 사람 수의계약이나 밀어주는 무소불위 개판 5분 전 조직이, 감히 시민의 조직을 우습게 여긴다. 기가 찰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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