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운이 좋게도 참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대단한 명망이 있다거나 부를 축적하지는 못했지만(물론 모든 일이 그렇듯이 많은 부를 축적한 분도 계시지요), 일하는 것에 적절한 보상을 받고 있고, 그것으로 저와 저의 가정이 꾸려지고 있습니다. '조금 적게 벌면 조금 적게 쓰면 된다'라는 게 제가 가진 돈에 대한 생각인데(그래도 조금 많으면 좋겠지만요) 아내와 얘기해 보니 주말에 동네를 산책하고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수준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다행히도 가끔 드라이브를 가고, 책도 여러 권 사고, 커피와 조각케이크를 같이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돼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오늘 친구와 얘기 중에 이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어떤 강의를 듣고 있는데, 강의하시는 분이 왜 이 일을 하고 있느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분의 말씀은 강의를 듣는 당신들은 대단히 깨어있고 충분히 능력 있는 사람들인데, 왜 이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하느냐일 것입니다. 본인 역시도 충분히 대단한 사람인데 하필 직업을 잘못 선택해서 내 능력에 비해 인정도 못 받고 돈도 못 벌었다. 그러니 당신들은 나의 길을 밟지 말고 로스쿨(?)을 가라.(해석:내가 그걸 하고 싶었는데 우리 때는 그런 게 없어서 못했다. 나는 그걸 하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해석:내가 지금 너희들 나이 같았으면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될 정도의 사람이다.)
로스쿨은 어떤가, 시험이 따로 있나, 어디가 괜찮은가까지 이어지는 잡담을 마칠 즈음 지금 하는 일에 더욱더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하자는 말로 좋게(?) 마무리 짓고 헤어졌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을 하대하는 사람들은 비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우월함을 은연중에 뽐내기 위한 겸손에 지나지 않지요. 직업 선택에 문제가 있어 이 정도의 인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나는 매우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그분은 누가 봐도 충분히 잘하시고 훌륭한 분인데 왜 그런 얘기를 하시는지..
저도 그렇게 제 직업을 하대할 적이 있었습니다. 건축사를 취득하기 전에는 건축사만 따면 때려치운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래도 시작했으니 호박이라도 베어야 한다는 일종의 오기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일을 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다는 두려움도 함께였다는 것을 한참이 지난 후에 알았습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 쓴 시간, 돈, 노력을 아까워하며 도저히 다른 일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기'라는 변명으로 제 직업을 욕하고, 그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어 내가 더 우월하다는 것을 뽐내려 했던 것입니다.
제가 이 일을 그만두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 하던 일도 좋았고, 지금도 참 좋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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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의 내 속마음을 지금 터놓아 본다. 저 마음가짐이 최근에 생긴 것이 아니라 몇 년 전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생각은 글이 되고 글은 무의식을 지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일단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