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랙슨을 차 안에 달아버렸으면
시니컬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
사고를 줄이겠다고 시내주행 속도를 시속 50킬로로 제한하고, 어린이 보호구역은 30킬로로 제한했지만 운전자들의 마음가짐은 속도제한과는 반대로 조급해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수시로 불필요한 클랙슨 소리가 거리를 울리기 때문입니다.
동남아 여행 시 시시때때로 울리던 오토바이의 경적소리가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오토바이의 짹짹거리는 소리는 자동차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비할 바가 아니죠. 그만큼 자동차의 클랙슨 소리는 고막을 때리는 정도가 강합니다. 화들짝 놀라는 건 물론이거니와 가끔 공기의 울림이 온 몸을 잡고 흔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클랙슨은 위험상황을 알리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존재가치에 대해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을 정도죠. 다만, 최근 제 달팽이관을 뒤흔드는 클랙슨 소리 중 용도에 맞게 쓰인 경적소리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싫어하는 경적소리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울리는 클랙슨 소리입니다. 앞으로 끼어드는 차가 미워서, 신호가 바뀌었지만 출발이 늦는 앞차가 갑갑해서 울리는 짜증 섞인 클랙슨 소리가 싫습니다. 위험을 예방하지도, 상대방에게 내가 먼저 가겠다는 알림을 주는 소리도 아닌 소리입니다. 그저, '나 너 때문에 짜증이 나!'라는 외침인 경적 소리는 퇴근 후 즐거운 산책길에 찬물을 끼얹습니다. 그래서 정말 싫습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 하였는데, 짜증은 나누면 몇 곱절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짜증이 섞인 클랙슨 소리는 사방으로 전파되어 또 다른 이의 클랙슨 소리를 부릅니다. 하모니이기보다는 헬모니가 되어버린 우렁찬 경적 오케스트라가 하루가 멀다 하고 달팽이관을 내리는치데, 그 정도가 요즘 들어 더욱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짜증을 표현하기 위해 핸들의 중앙부를 깊이 누르는 이들은 주변을 잘 살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차도 옆에는 인도가 있다는 사실, 인도 위에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람이 잠자는 아기를 뉘인 유모차를 미는 부부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쉬이 '빠아아앙' 하고 감정을 쏟아냅니다.
잠자는 아기를 유모차에 태운 채 걷는 부부는 늘 노심초사합니다. 좁은 골목길에서 갑자기 차가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조심, 또 조심합니다. 눈에 띄게 늘어난 배달오토바이가 쌩하고 옆을 지나갈 때면, 혹시 유모차를 스치지는 않을까 걱정합니다. 산책코스 중에 조심해야 할 포인트들이 쌓여가고, 그렇게 걱정 맵이 뇌 속에 그려졌기에 특정 지역에서는 더욱 조심하여 위험을 예방합니다.
하지만 클랙슨 소리는요? 사실 클랙슨이야말로 제일가는 걱정거리입니다. 아무리 조심해도 아기의 고막을 때리는 소리는 막을 방법이 없고, 어디서 갑자기 터져 나올지 예상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아기의 단잠이 깨어지는 것은 감당할 수 있지만, 아기의 작디작은 심장이 놀라 전력질주를 하면 그처럼 안쓰러운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클랙슨을 차 안에 달아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위험한 상황에서 예방을 하기 위해 활용하는 경적이라면, 그렇게 해도 충분히 의사전달은 될 것 같습니다.
경적을 울리는 사람도 불필요한 클랙슨 소리에 함께 고통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좁은 골목길, 특히 주거지역 내의 클랙슨 소리에 깜짝 놀랄 때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