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님, 저 두통이 있어요
시니컬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
운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 중에는 목적지까지 '빨리' 도달하는 것에 목표를 두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급출발, 급정거로 인해 당황한 경험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택시 기사님들은 유려한 끼어들기 스킬과 섬세한 앞차 간격 조절로 한치의 양보 없이 한 칸이라도 앞에 서는 기지를 발휘하실 때가 많습니다. 신호가 바뀔 때면 여지없이 엔진 rpm을 올려 몸이 뒤로 젖혀지는 출발을 시전해 다이내믹한 승차감을 선사하십니다.
물론 가끔 몹시 급한 상황에서 택시를 타는 경우에, 제 마음이 조급한 상황일 때, 이러한 운전스킬은 감사할 때가 있습니다. 늦은 약속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당하게 택시 타고 최대한 빨리 가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펙터클한 운전의 결과는 고작 5분 이내의 시간차를 만들어낼 것이고, 이는 기다리는 이가 웹툰 하나 볼 시간 정도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몸이 앞뒤로 젖혀지는 것을 버티고자 무의식 중에 힘이 잔뜩 들어간 몸뚱이는 택시에서 내리는 발걸음에 긴장을 풉니다. 약속 장소에는 예상보다 5분 남짓 일찍 도착했지만, 제 몸은 예상보다 1시간 정도 일찍 피곤할 것이라는 사실을 가끔 망각하곤 합니다. 지나고 돌이켜보면 세이브한 5분의 가치가 과연 주변 차들을 인상 쓰게 하면서까지 지켰어야 할 5분인지, 굳이 긴장감을 가지고 택시를 타야 했을지 의문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오늘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출근했습니다. 교통카드를 찍고 버스에 올라탔지만, 제가 탄 버스는 실제로 롤러코스터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출근길 어깨를 맞대고 서있던 승객들은 무게중심을 잃고 놀람을 금치 못하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께서는 기사분께 쓴소리를 날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뿐, 기사님은 습관성 급제동과 급가속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비단 오늘 아침뿐만이 아닙니다. 택시를 이용할 때도, 버스를 이용할 때도 이런 일은 종종 벌어집니다. 우리가 지하철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에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지하철 인근 집값이 비싼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태우는 운수업 종사자들이 정기적으로 운전습관에 대한 테스트를 치렀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누적으로 운전기록이 저장되어 평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안전운전을 하는 기사님들이 빨리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면피가 될 수도, 이용하는 승객들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빨리 가 달라고 재촉하는 손님들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 일 수도 있기에, 의심스러운 인상을 가진 기사님을 뵐 때면 전 목적지를 밝힌 후 한마디를 덧붙이곤 합니다.
"기사님, 두통이 있어서 그러는데, 조금 부드럽게 가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 급하지는 않아요."
차마 "너 운전 못해"라고는 말하지 못하는 소심한 저는 난폭한 운전을 맞이할 때 이렇게 대응하곤 합니다.
출근길, 롤러코스터를 탄 손님들의 비명을 들은 이 날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