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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황 Mar 16. 2022

아내가 집을 안 비워서

시니컬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

손님을 초대하는 행위 자체를 즐겨하는 편입니다. 작은 모임 하나라도 주최하는 사람과 초대받는 사람을 가시화함으로써 환대라는 개념이 투입되면, 그 자리가 특별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간단히 술을 한잔 할 때도, 스크린 골프를 칠 때도 작은 이벤트를 마련하곤 합니다.


단체창에 보낸 초대메세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다 보니 모임은 자연스레 집으로의 초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벌써 여러 차례 지인들이 집에 초청되었고, 주최자인 저는 피자 몇 판을 주문함으로써 역할을 다해 왔습니다. 아직까지는 즐거운 기억뿐이라 아내도 저도 손님을 초대하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친한 전 직장동기가 이사를 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인지 집들이에 대한 얘기가 없어 넌지시 물었습니다.


"집들이 안 하냐? 얼굴 좀 보자."


동기방에 한마디 남겼을 뿐인데, 대화창은 어김없이 불이 납니다. 다들 잘 지내는지, 이직한 직장은 마음에 드는지, 코로나 걸린 사람은 없는지 등등 짧고 굵은 안부가 오갔습니다.


잠시 찾아온 침묵 사이에 동기는 아내가 언제 자리를 비우는지 일정을 확인했고, 이내 대략 언제쯤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그간 아내가 계속 집에 있는 바람에 모임을 못 잡았다는 부연설명이 더해졌습니다.  대체 왜 아내가 없을 때 모이는지에 대한 질문을 해보았지만, 다들 알면서 왜 그러냐는 반응입니다.


일종의 사회적 합의에 해당하는 이런 식의 선입견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놀 때는 아내가 없어야 더 재밌다는 것, 결혼하면 내 인생은 재미가 없어야 한다는 것, 회사생활과 사회생활은 당연히 분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 등이 제가 공감하지 못하는 무언의 사회적 합의입니다. 물론 이 외에도 수없이 많습니다. 저는 지금 시니컬하니까요.


유부남들이 아내 없는 친구 집에 모였을 때에만 벌어질 수 일들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아내가 있을 때보다 술을 더 마실 수 있고, 단어 씀씀이에 욕설이 포함될 수 있고, 혹시나 약간의 음담패설이 오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30대 후반이 되어보니 음담패설조차 유치하게 느껴져 굳이 아내가 없어도 달라질 게 없어 보이지만 말입니다. 아, 어쩌면 누군가의 전여친 얘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제가 아는 한 이 모임의 유부남들은 과거가 그리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부남의 집들이를 아내가 없는 날에 하자는 암묵적인 합의는 이뤄진 듯합니다. 비단 집들이뿐만 아니라 다수의 모임에서 아내 없는 남자들끼리의 모임은 진정한 자유로서의 의미를 가지곤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자유가 진정한 자유인지, 뭔가 자연스럽지 못한 전개가 아닐지 의구심이 듭니다.


같은 표현이라도 아내가 심심할 수 있으니 아내 없는 날에 모이자는 표현이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그 편이 괜한 오해로 발전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유를 갈망하는 듯한 표현은 현실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친구들을 부를 때 자리를 비우고 말고는 아내의 선택으로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아내가 원치 않으면 밖에서 만나는 것도 고려해야겠지만요.


같은 결과일지라도 아내가 집을 안 비워서 집들이를 못했고, 아내가 없는 날에 집들이를 하자는 말보다는 아내와 합의 하에 날짜를 정했고, 아내가 없을 수도 있다는 인폼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괜스레 불편했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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