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지않는 아기, 얌전하구나

아빠를 쏙 빼 닮았네

by 소소황

코로나 핑계인지, 게으른 탓인지, 주로 집에서만 생활한 남편의 아기는 여타의 주변 아기들에 비해 새로운 경험을 덜 한 편이다. 비록 아내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탓에 크게 개의치 않는 듯 하지만,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고, 적극성을 겸비한 아이로 커가길 바라는 남편은 아빠로서의 역할에 있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반성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친구를 만난다는 사실에 부담이 덜해지자 남편은 친구네 가족과 약속을 잡았다. 주변 친구들이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가졌기에 아기에게 친구를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에 추진한 주말 나들이였다. 하지만 아직 함께 놀기엔 다소 어렸던 것일까, 아기들은 각자 놀뿐 함께 있지 못했다.


따로 놀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행동반경에 있었다. 친구의 아기는 쉴 새 없이 뛰어다녔고, 주변의 공이란 공은 다 차고 다녔다. 지나다니는 RC카 또한 친구의 아들은 놓치지 않았다. 한강공원이 자기집 앞마당인양 뛰어다녔고, 우리집 작은 인간은 이와 반대로 돗자리 주변만 서성였다. 평소 아파트 단지에서 놀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에 남편은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30개월을 성장한 두 아기는 너무도 달랐다. 전력질주를 하는 친구의 아들은 보폭부터가 남달랐고, 발달된 근육 때문인지 안았을 때 느낌도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친구 부부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아기를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고, 단 한순간도 둘이 같이 앉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 '힘든 육아란 저런 것이구나', '아들을 키운다는 것은 저런 것이구나', '우리 아들이 무척이나 얌전하구나' 등의 생각과 함께 안타까움과 부러움이 공존하는 남편이었다.


반면에 우리집 작은 인간은 돗자리 주변을 벗어나지 못했다. 뛰어다니는 친구의 아기를 따라 조금 뛰어볼까 싶다가도 이내 시선을 돌렸다. 결국 아기의 시선은 돗자리 위 엄마의 가방, 돗자리 옆 삐죽이 솟은 잡초, 돗자리 주변의 돌멩이에 머물곤 했다. 남편은 이 모습이 사내답지 못하다는 고루한 생각과 함께 소극적인 아이로 성장하면 어쩌나 하는 앞선 걱정을 했다.


사실 남편은 알고 있었다. 이 걱정의 원천이 아직은 여리여리한 우리집 작은 인간이 자신을 쏙 빼닮았기에, 그래서 이후에 어떻게 성장할지 예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생기는 우려라는 점을 남편은 알고 있었다.


남편은 어릴 적 친구들이 놀이터에서 뛰놀 때 방구석에 앉아 퍼즐을 맞추며 유년기를 보냈다. 부모님의 기억은 또 다를 수 있겠지만, 남편 기억 속의 자신은 야외활동보다 실내활동을 좋아하던 아이였고, 뛰어다니는 친구들의 에너지를 때론 부러워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남편은 자신을 닮은 아내와의 합작품이 뛰지않는 모습에 앞선 우려를 했다.



볕이 좋은 날의 한강공원은 삼삼오오 모여 노는 아이들과 산책하는 강아지, 낮술을 즐기는 어른들의 무리까지 다양함과 북적임이 가득한 곳이었다. 동반육아 겸 나들이를 나간 남편과 아내는 한강라면도 즐기면서 여유로움을 즐겼다. 아기도 아파트 단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소에서의 마당놀이를 즐겼다. 비록 맘껏 뛰어다니지는 않았지만 우리가족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에 남편은 만족했다.


그리고 남편은 결심했다. 더 다양한 경험에 노출시키고,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겠다 결심했다. 비록 지나가는 어른들이 얌전하다고, 그래서 이쁘다고 칭찬하지만, 그런 모습이 자신을 닮았을지언정 부모의 게으름으로 비롯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쉬고 싶어도 뛰어보는 아빠가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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