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있어 주 양육자가 짊어지는 책임감은 한 생명체의 존속을 책임지는 것과 같아 형언할 수 없는 무게감을 어깨에 이고 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아내가 짊어질 책임감과 무게감을 덜어주고 싶었고, 스스로가 주 양육자가 되어도 좋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당장 하던 일을 중단할 수는 없기에 이제 막 눈을 뜬 아기를 오롯이 엄마 품에 안겼다. 그렇게 시작된 아내의 주 양육자 생활기는 남편의 눈에 적잖이 고되 보였고, 특히 중단되었던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시점부터는 더욱 고될 수밖에 없었다.
아기의 무게가 세배나 늘고, 아기스러운 말투로 자기주장을 하게 된 이후로 주 양육자와 보조 양육자의 역할 간극은 더욱 커져갔다. 자연스레 아기의 주변을 챙기는 역할들은 아내에게 집중되고 있었고, 집안 정리 등은 남편에게 주어지고 있었다. 조금은 이기적일 수 있겠지만, 아내의 컨디션이 특별히 좋지 못한 날, 혹은 자신의 컨디션이 특별히 좋은 날에 남편은 어김없이 아기의 옆자리에 몸을 뉘었다. 혹 밤중에 아기가 깨더라도, 옆에 누운 아빠를 보고 안심함과 동시에 금방 다시 꿈나라로 가게 하기 위함이었다.
남편의 시도는 긍정적이었고, 그런 날이면 아내가 잊지 않고 감사의 표현을 했다. 남편의 어깨는 으쓱했고, 자신이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빠라는 사실에 스스로 만족해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좋은 남편 타이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침대 위에서 잠든 남편과 아내, 침대 밑의 토퍼에서 잠든 아기의 평화로운 밤은 잠결에도 아내를 찾는 아기의 울음소리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잠귀가 어두운 남편은 그 흔들림을 느끼지도 못한 채 자기 일쑤였고, 아내는 힘겹게 잠에서 깨어 아기 옆으로 가 진정시키곤 했다. 혹여나 아내가 컨디션이 좋지 못한 날에는 남편이 잠결에 깬 아기를 안정시키려 아기 옆으로 갔지만, 우리집 작은 인간은 그럴수록 더 엄마를 찾았다.
"아빠, 가!"
외마디로 남편을 밀쳐낸 아기는 아내의 품에서만 새근새근 잠을 청했다. 때로는 잠결에 침대에 올라와 "아빠, 가!"를 시전 했으며, 발길질에 놀라 깬 남편은 갈 곳을 잃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어둑한 밤에는 설 곳을 잃어버리는 남편이 되어있었다.
그럴수록 아기의 옆자리에 누워 체온을 공유할 기회를 엿보곤 했지만 소용없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한 발짝 물러서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남편이었다.
저녁 9시 30분, 어김없이 밤이 찾아오면 아기는 남편과 아내의 자리를 지정해줬다. 남편은 침대 위, 아내는 아기의 옆자리로 지정했고, 그로 인해 남편은 홀로 침대 위를 지켰다. 아기에게 간택된 아내는 책을 읽거나 옛날이야기를 해주느라 목이 쉴 지경이었고, 반면에 배척당한 남편은 편히 쉴 수 있었다. 다소 이기적일 수 있겠지만, 남편은 가끔 아내의 옛날이야기 소리를 들으며 아기보다 먼저 곯아떨어지곤 했다.
맞벌이 부부인 남편과 아내는 우리집 작은 인간이 잠들 시간이면 지쳐있기 십상이었다. 쉼을 필요로 하는 그 순간에 쉴 수 없는 것이 육아였고, 반복되는 일상에 욕심을 버리고 포기하는 순간들이 늘어났다. 그렇게 익숙해지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하루하루가 유난스럽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비록 남편은 침대 위 홀로 눕고, 아내는 침대에 오르지도 못한 채 아기 옆에 누워 자지만.
침대 위에 홀로 누운 남편의 머릿속에는 세 가지 생각이 공존했다.
'피곤한데 엄마만 찾아줘서 다행이다.',
'아내 목쉬겠다. 빨리 좀 자라 아가야..',
'나도 옆에 누워 체온을 느끼고 싶다.'